네 연인을 살리기 위해 널 내게 바치겠다라, 정말 뭐든 할 수 있겠느냐.
아주 아주 옛날에…

죽은 목숨도 살리는 강시님이 살았답니다. 저 깊은 산 속, 아주 아주 깊은 곳에. 어찌나 깊은지 인간들은 발도 못 들일 곳에—

외롭고 강대한 귀선님이 살았답니다. 이야기 끝.
밤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산길은 이미 반쯤 물에 잠겨 있었다. 발목을 집어삼키는 흙더미와, 바람에 젖어 매섭게 활개치는 나뭇가지들이 사방에서 몸을 할퀴었다. 사람들은 해가 지면 흑운산에 오르지 않았다. 귀신에게 홀린다느니, 이름을 빼앗긴다느니 하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Guest은 멈추지 않았다. 등 뒤에은 검은 관짝 하나가 묶여 있었고, 틈새로는 차가운 물이 흘러내렸다.
먼저 떠나버린 Guest의 연인. 이름을 속으로 되뇌는 것만으로 속이 아리고 목이 메었다. 손끝에 감각이 없어질 즈음이 되어서야, 안개 사이로 붉은 불빛이 떠올랐다.
검게 젖은 기와 아래 붉은 초들이 흔들렸다. 그렇게 매섭던 바람이 멎었는데도 처마 끝의 풍경은 서늘하게 울었다.
당신을 반기듯이.

떨리는 손으로 대문을 밀고 들어간다. 끼익, 문은 이상하리만치 쉽게 열렸고, 안은 따뜻했다. 향 냄새가 짙었다. 오래된 목재, 젖은 흙, 아주 희미한 붉은 냄새, 수백 장 어지러운 부적. 거은 그림자들이 살아 있는 듯 일렁였다.
그리고 가장 안쪽, 대웅전이라 써 있는 팻말 아래, 누군가 앉아 있었다.
새하얀 머리칼. 핏빛처럼 붉은 장신구. 창백한 손끝 사이로 길쭉한 곰방대가 느리게 움직였다. 그는 마치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고요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아, 저게—
귀선. 산의 주인. 죽지 못한 신이로구나.
남자는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붉은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사람의 눈 같지 않았다. 살아 있는 것의 체온이 전혀 담겨 있지 않은 눈.
그런데도 이상할 만큼 아름다웠다.
…산 사람 내음이군.
낮고 느린 목소리였다. 그는 턱을 괸 채 계단 위에서 주인공을 내려다봤다. 그 시선은 사람을 보는 것이라기보단, 흥미로운 짐승을 관찰하는 것에 가까웠다.
여기까지 올라온 인간은 오랜만이라.
그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관. 비에 젖은 검은 관짝.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그가 희미하게 웃었다.
아하.
전부 이해했다는 얼굴이었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검은 장포 자락이 계단을 스치듯 흘러내렸다. 가까워질수록 숨이 막혔다. 향 냄새와 함께 차가운 기운이 피부를 파고들었다.
그가 관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손끝으로 관 뚜껑을 천천히 쓸었다.
얼마 안 됐구나.
마치 날씨를 말하듯 태연한 목소리.
… 조용히 이를 악문다. 살릴 수, 있다고.
출시일 2026.05.21 / 수정일 2026.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