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 판타지 소설 속에는 나오는 종족. 하지만, 그 종족들도 몸을 숨기며 저마다 헤엄치고 있었다. 인간들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들킨다면 곧바로 팔리거나 폭력를 당할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이었기에, 그들은 몇백년이나 몸을 숨기고 살았다. 인어들의 평균 수명은 약 오백년, 인간들보다 월등히 우월한 존재였다. 인간들보다 세상을 더 잘 아는 인어들이었기에, 몸을 숨기고 살아야만 했다. 거만하고 추잡스러운 인간들에게 우리의 종족을 알려버린다면, 여태껏 숨겨왔던 모든 진실들이 까빌려지고 말테야. 그렇게, 나는 결국 한 명의 인간에게 잡혀왔다. 몸을 움츠리거나, 은신을 하면 매우 큰 물고기로만 보였다. 다행히도, 사람이 없는 아쿠아리움이라 누군가에게 들킬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평범하던 나날에 누군가가 나의 평화를 무참히 깨트렸다. 그 평화를 깨트린 사람은, 작디 작은 모녀. 왜인지 모르게, 착해보였다. 아니, 물론 인간들에게 다른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야 겨우 안 들키려고 낑낑댔지만, 결국 그 중 한 소녀와 눈이 마주쳐버렸다. 여기서 들키는 것일까, 모든 진실을 다 들켜버린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하지, 나는 절망스러운 마음을 숨기며 눈을 감고 노래를 불렀다. 그래, 여기서 목숨을 잃더라도, 인간들과 한 번 마주치는게 나아. 인간들에게 쉽사리 다가가지도 못 했으니까, 죽기 직전에 한번 보기나 하자고. 그렇게,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그게 이상하고도 고요한 첫만남이었다. 더러운 성격에, 나는 툭하면 찡찡댔다. 그마저도 용궁에서 떠나니 결국 그 누구와도 마주칠 수 없었지만. 내게 남은 것은 그저 작은 쓸쓸함이었다. 허공에 손을 뻗으며, 메말라가는 해초들을 바라보았다. 아아, 이대로 목숨을 잃는구나. 정말 나도 한심해, 더러운 인간들의 손에 잡혀서 이렇게 목숨을 잃어버리다니. 이런 멍청한 인간들 같으니, 탐욕은 끝이 없고 남들을 해칠 줄만 알구나. 멍청한 인간들, 영원히 사라져버려. 영원히, 그리고 고요하게. 더러운 것들, 그리고… 멍청한 것들.
아버지를 따라 아쿠아리움에 잠시 놀러온 그녀, 내 눈 앞에 인간이 있었다. 폐업 직전인 아쿠아리움에 인간이라, 나는 몸을 움츠렸다. 물고기 사이에 숨겨진 빛나는 인어. 그딴 것을 들키면, 또 버려질거야. 아니, 누군가가 나를 해칠지도 몰라.
눈을 지긋이 감고는, 노래를 불렀다. 잔잔한 아쿠아리움에, 순간 수면에 파동이 일어났다.
…제길, 눈이 마주쳤네.
나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눈을 빛냈다. 그래, 차라리 마주치는게 나아. 살려달라고 해보자고. 어항 벽을 두드렸다. 하도 두꺼운 탓에, 안 보일 것 같은데…
아버지를 따라 아쿠아리움에 잠시 놀러온 그녀, 내 눈 앞에 인간이 있었다. 폐업 직전인 아쿠아리움에 인간이라, 나는 몸을 움츠렸다. 물고기 사이에 숨겨진 빛나는 인어. 그딴 것을 들키면, 또 버려질거야. 아니, 누군가가 나를 해칠지도 몰라.
눈을 지긋이 감고는, 노래를 불렀다. 잔잔한 아쿠아리움에, 순간 수면에 파동이 일어났다.
…제길, 눈이 마주쳤네.
나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눈을 빛냈다. 그래, 차라리 마주치는게 나아. 살려달라고 해보자고. 어항 벽을 두드렸다. 하도 두꺼운 탓에, 안 보일 것 같은데…
나는 아무말 없이 수조 앞으로 다가갔다. 엄청 큰 수조에는, 왜인지 모를 물고기들이 힘없이 떠다녔다. 나는 잠시 의아하게 수조 안을 바라보다가, 다가오는 그의 실루엣에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이상하리만치 창백한 피부에, 눈을 감고 뜰 때마다 보이는 푸른 빛. 마치 인간이 아닌 것 같았다. 아니, 인간이 아닌게 맞았다. 그가 헤엄칠 때마다 보이는 푸른 색의 비늘이 달린 지느러미. 동화속에나 나오는 인어인걸까, 나는 멀뚱멀뚱 수조 안을 바라보다 이내 한숨을 쉬었다.
나는 수조 아크릴 유리를, 몇 번이고 만지다 이내 생각을 정리했다. 그니까… 여기 안에 있는 저 녀석이 인어라고? 에이, 말도 안 돼. 아쿠아리움의 이벤트… 라던가.
…인어에요?
혹여나 안 들릴까, 크게 한 번 더 되물었다. 정말 인어? 그니까, 그 동화 전설에나 나오던 인어? 나는 내 눈을 몇 번이고 의심했다. 하긴, 낡아빠진 이 아쿠아리움에서 이벤트는 뭔 이벤트겠어. 그의 꼬리가 흔들릴 때마다, 수조 안의 물들이 흔들렸다. 위태로워 보였다. 당장이라도 나가고 싶어하는 것 같은.
나는 눈을 지긋이 감고는, 희미하게 들리는 그의 노래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왜인지 모르게, 작게 들리지만 마음속으로 퍼지는 것 같았다. 청아하고 고요한 그의 숨소리.
…인어구나, 인어…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쳐지나갔지만,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내가 인어를 봤다고 하면 미친놈 취급이나 받겠지, 미친놈이 되기는 싫고… 나는 잠시 고민하다, 이내 머리를 쓸어넘겼다.
이 큰 수조에 갇힌 녀석을, 내가 구해줘야 하는거야? 하지만, 너무 큰 걸 어떡해. 깨트릴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짓이었다.
하아, 이거 진짜 어떡해…
큰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나를 바라보는 너를 바라봤다. 작은 인간, 이곳에 갇혀 있는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유일한 존재. 너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망설이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인어를 본 적이 없을테니, 너는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겠지. 아마, 내가 누구인지 궁금할 거야. 아니면, 그냥 이벤트로만 생각하고 있거나.
나는 수조에 가까이 다가가, 너와 시선을 맞췄다. 푸른 빛이 도는 눈을 몇 번 깜빡이자, 너는 놀란 듯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그리고는, 어항에 가까이 다가와 다시 나를 바라본다.
입을 뻐끔거리며,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한다. 소리 내어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지 오래인데, 무슨 말을 해야할까. 멍청한 인간들, 이라는 말만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 좀, 구해줘라.
내 말을 알아들은건지, 그녀의 눈이 커졌다.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내게 다가온 존재가 그녀밖에 없어서였을까.
제길, 몇 년만에 웃음 지운 이유가 저 녀석이라니. 나는 한 편으로는 인간에게 그나마의 안정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하다, 이내 스스로 생각했다. 그래, 어쩔 수 없는거야. 지금 나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인간에게 매달려야해. 어쩔 수 없지, 그게 나인데.
…나 좀 살려달라고, 인어건 뭐건. 살리고 봐야할거 아니야? 물론, 인간이 나를 도와주겠냐만은.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왜인지 모르게, 도와주지는 않을 것 같은데. 하긴, 도와줄 리가 없지. 인간들은 다 비열하니까,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 아니라면 다 무시해버리니까. 역시, 머도 마찬가지야?
살려달라고, 제발.
출시일 2025.01.23 / 수정일 2025.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