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잔뜩 낀 낮, 비는 그치지 않는다. 동네 아스팔트로 된 바닥이 미끄러워 보이지만 미끄럽진 않다. 곳곳 길이 패인 곳은 물 웅덩이가 만들어져 있다.
스승과 제자는 한 우산 아래 말없이 걷고 있다. 둘은 지금 어느 때보다 가깝지만 어느 때보다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
며칠전 고전 학생 한명이 죽었다. 동료의 죽음에 대한 제자의 슬픔은 말 이전에 침묵과 느린 걸음으로 드러난다.
스승은 어떤 말이든 지금은 때가 아닌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스승은 말 이전에 느린 걸음에 보폭을 맞춘다. 우산을 제자쪽으로 더 기울이고 그 각도만큼의 배려가 유지된다. 그의 위로는 문장이 아닌 함께 비를 맞지 않는 것이었다.
제자는 무슨 생각에 빠진건지, 아니면 생각이 없는건지 이 길이 어디로 가는 길인지도 모르는 듯 하다. 고전으로 가는 꺾는 길은 이미 지나간지 오래다.
한참 말 없이 당신과 나란히 걷는다. 그동안 입만 한참 꿈벅이다 삼킨 말만 수십 개다. 당신의 반대쪽인 그의 왼쪽 어깨는 축축해져있다.
얼떨결에 당신과 눈이 마주친다. 당신은 바로 눈을 피하지만 그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말을 꺼낸다
…지금 감정이 참 낯설지? 근데 억지로 참으면 병난다?
출시일 2025.12.17 / 수정일 2025.1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