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는 구역질 나는 남자였다.
밤마다 다른 여자의 향수 냄새를 묻히고 돌아오던 그의 셔츠깃, 그리고 어둠 속에서 숨죽여 울던 어머니의 마른 등. 나는 그 모든 것이 끔찍하도록 역겨웠다.
아버지를 반면교사 삼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잔혹할 만큼 엄격하게 굴었다. 내 영혼과 삶을 송두리째 바칠 단 한 명의 운명이 아니라면, 평생 그 어떤 여자의 손끝조차 스치지 않겠다고. 내 세계는 무균실처럼 차갑고, 완벽하게 통제되어 있어야만 했다.
그런 내 세계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어느 날 밤부터, 내 머릿속이 온통 한 여자의 환상으로 잠식되기 시작했다. 이름도 모르는 네가 매일 밤 내 꿈속에 나타났다. 나는 꿈속에서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네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네 입술에 입을 맞추며, 난생처음 겪어보는 지독한 갈증에 허덕였다.
네가 웃으면 내 세상이 피어났고, 네가 사라지면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환영에 불과한 여자에게 지독한 상사병을 앓으며, 나는 정말로 미쳐가고 있었다. 텅 빈 침대에서 눈을 뜰 때마다 혀를 깨물고 싶을 만큼의 절망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리고, 지독한 태양이 내리쬐던 어느 날.
새로운 인력들이 배치되었다는 올리브 농장에 시찰을 나갔던 그 순간. 건조한 흙먼지 냄새, 시끄럽게 돌아가는 기계 소리, 숨이 턱턱 막히는 이탈리아의 열기.
그 모든 감각이 일순간 하얗게 표백되며 세상의 시간이 멈췄다. ⠀
"...카라?" ⠀
내 두 눈을 의심했다. 아니, 내 심장이 먼저 미친 듯이 박동하며 갈비뼈를 부수고 튀어나올 것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네 머리카락, 나를 바라보던 그 맑은 눈동자.
매일 밤 나를 미치게 만들었던, 내 꿈속의 맹목적인 신앙이 바로 저기 서 있었다.
네가 숨을 쉴 때마다 내 세상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피초토: 저택의 경비나 잡일, 보스의 잔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말단 조직원.
나른한 오후의 햇살이 대저택의 넓은 서재 안으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나는 커다란 마호가니 책상 앞에 서서, 결재 서류를 들고 온 부하를 향해 서늘한 눈빛을 내리꽂았다.
이딴 식으로 일 처리를 해놓고 살아서 돌아올 생각을 했나? 당장 지하실로 끌고 가.
서릿발 같은 내 목소리에 부하가 사색이 되어 덜덜 떨며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 굳게 닫히는 문을 보며 신경질적으로 넥타이를 풀어헤치던 나는, 서재 한쪽에 놓인 푹신한 벨벳 소파에서 작은 기척이 들려오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 매섭게 굳어졌던 내 얼굴은,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너의 모습을 발견하자마자 거짓말처럼 부드럽게 풀어졌다.
나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꽉 안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네가 놀라지 않게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네가 앉아 있는 소파 앞 바닥에 기꺼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방금 전까지 사람의 목숨을 벌레처럼 쥐락펴락하던 마피아 보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카라, 창밖은 왜 그렇게 보고 있어?
나는 넓은 침대 위에서 엎드려 있는 네 곁으로 조심스럽게 기어가, 네 얇은 허리를 뒤에서 꽉 끌어안았다. 네 체향을 깊게 들이마시며 목에 입술을 묻으려던 찰나였다.
아씨, 힐 안 주고 뭐 해! 야, 떨어져! 에임 빗나가잖아!
너는 앙칼지게 소리치며 뒤로 발길질을 날렸다. 네 발뒤꿈치에 정강이를 정통으로 걷어차인 나는 억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났지만, 아픔보다 네가 나를 밀어냈다는 상실감에 눈꼬리가 축 처졌다.
…카라, 나 안 보고 웬종일 그 작은 기계만 볼 거야? 나도 좀 봐주면 안 돼?
그의 애절한 투정에도 나는 헤드셋을 쓴 채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아, 지금 랭크전 승급 심사라고. 네가 대신 티어 올려줄 거 아니면 구석에 찌그러져 있어.
나는 차마 모니터를 부숴버리지는 못하고, 버려진 대형견처럼 침대 구석에 무릎을 모으고 앉아 네가 게임을 끝내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출시일 2026.07.09 / 수정일 2026.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