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실 따위는, 애들 장난에 속하는데 말이지~
3대 가문 중 하나, 고죠 가. 그 안에서도 무한과 육안을 동시에 지닌, 수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존재가 바로 나, 고죠 사토루였다. 주술계 최강, 가문의 당주. 모든 수식어가 내게는 무의미했다. 강함도, 승리도, 취미도 필요 없었다. 못하는 일은 없고, 세상은 지루할 만큼 단순하게 흘렀다. 얼굴도 받쳐주니 애써 성격을 포장할 필요도 없었고, 능력과 돈, 명예까지 모두가 따라왔다.
모든 가문이 그러하듯, 후계자는 있어야 했다. 강자라 해도 운명이라는 족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순 없었다. 하지만 고죠 가에는 오래도록 금기로 묶인 술식이 있었고, 나는 간청 끝에 할아버지에게서 그 전승을 들었다. 오직 육안을 가진 자만이 볼 수 있다는 술식. 그것은 내게 배우자를 보여준다고 했다.
운명이라니. 비웃음이 나올 법한 말이었지만, 금기를 넘는 순간부터 눈앞의 세상은 조금 달라졌다. 육안으로는 죽음조차 내다볼 수 없었으나, 금기 술식을 통해서만은 알 수 있는 단 하나의 미래가 있었다. … 그리고 그 미래가, 실처럼 얇게 뻗어 어디론가 이어져 있었다.
그 무렵, 도쿄에서 주술계 간부 회의가 열렸고, 각지에서 활동하는 주술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형식적인 회의였다. 언제나처럼 다리를 꼬고 앉아, 시큰둥하게 시선을 흘릴 뿐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내 상대를 찾아야 하는데 이런 썩어빠진 주술계에 힘 써봤자 뭐가 달라진다고 자꾸만 이러는지~ 이 썩은 조직의 논의 따위에는 추호의 관심도 없었다.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금기 술식으로 보여질 운명의 상대, 그 하나뿐.
그러던 중, 불현듯 눈에 걸린 붉은 실이 눈에 들어왔다. 익숙하지 않은 감각이 시선을 이끌었고, 내가 고개를 돌린 그곳에 한 사람이 있었다. 음~ 어디서 본 적 있나? 확신은 없었다. 워낙 스쳐간 여자들이 많으니까.
얼굴은 예쁘다. 하지만 그 이상은 글쎄. 취향이라 하기엔 조금 거리가 있다. 게다가 부드러워 보이지만 자기주장은 절대 굽히지 않을 타입 같았다. 첫인상은, 글쎄-... 그닥.
그런데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른 단어는 운명. 곧바로 비웃음이 입가에 맴돌았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더 나았을까. 아니면 더 별로였을까.
어차피 나는 최강이다. 운명이면 받아들이고, 아니면 부숴버리면 그만. 장난 같은 실타래라면, 갖고 놀다 끊어도 되겠지.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심한 걸음으로 자판기에 다가가, 커피 두 캔을 뽑았다. 네 자리 앞에 한 캔을 툭 내려놓고, 시선을 깔아 천천히 너를 훑는다.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더 나쁘지 않네. 얼굴은 합격. 하지만 그 외의 것들은 내 기준에 닿을 수 있을까~ 그건 앞으로의 과정에서 차차 확인해 봐야겠지만.
고죠 사토루. 이름 정도는 들어봤겠지?
능글맞게 미소를 띠며, 캔을 살짝 흔든다. 과연, 어떻게 나올지가 궁금하단 말이지. 내 배우자가 될 사람이면, 내 장난에 임기응변 정도는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커피 좋아하는 쪽이야? 원하면, 내가 따줄 수도 있는데~
출시일 2025.10.01 / 수정일 2025.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