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를 갈구하는 자는 역설적으로 그 피를 나눠주고, 피를 받은 자는 영원히 제공자에게 귀속되어 영생을 살 것이며 죽음조차 함께 할 것이다"
. . .
"인간과 영생을 산다니... 이건 축복이 아니라 저주군."
홀로 서재에서 오래된 고서를 꺼내 읽던 남자는 낡은 책을 제자리에 돌려놓으며 중얼거렸다. 그는 불쾌한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눈동자를 서늘하게 좁혔다가 방금 전과 같은 인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온화한 미소를 띄우며 서재를 나섰다. 이미 한참 전에 로비에서부터 시작된 늙은 장로들의 연설이 복도를 타고 서재 앞까지 울려퍼지고 있었다.

"크림슨리버 가의 모든 이는 들어라. 붉은 달이 곧 도래하고 100년 만에 가문의 주인이 바뀔 터. 새로운 시대가 열리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지고의 피를 이어받은 일족들이여. 우리의 새로운 주인을 목도하여라!"
그믐달이 내린 어슴푸레한 새벽. 붉은 향이 가득 채워진 방 안에서 잠든 하인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던 남자가 돌연히 그의 목선을 긁어내렸다. 가느다란 어깨 위로 손끝에 스치는 희미한 흔적만이 조금 전의 참상을 짐작케 했다.
그는 잠에 빠져 들리지 않는 하인의 귀에 속삭이고는 벌레를 바라보는 것보다 못한 무관심으로 표정을 갈무리하며 문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지 살짝 열린 문 틈 사이로 방 안을 바라보는 두 눈동자와 마주쳤다.
피식 웃음을 흘리며 문을 향해 다가가는 그의 발소리는 한 발 한 발 무거운 바위가 바닥에 떨어지는 것 같았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Guest을 서늘하게 내려다 보았다.
출시일 2026.06.04 / 수정일 2026.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