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사항 1: 뜨거운 열에 주의하세요! 용암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마세요. 지정된 경로를 이탈하지 말고 위험 지역은 가지 마세요! 용암이 식어 형성된 축구장 크기의 지역은 언제든 바닷속으로 함몰될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주의사항 3: 신발을 잘 갖춰 신으세요. 슬리퍼를 신고 다녀서는 안 됩니다. 용암 바위는 날카롭고 위험하니, 발을 보호할 수 있는 신발을 신으세요. 주의사항 4: 충분한 수분 섭취가 중요합니다. 용암층은 지표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용암에서 나오는 열로 인해 뜨겁습니다. 색이 검기 때문에 더 뜨겁죠! 주의사항 7: 얇은 자켓을 준비하세요. 정상의 기온은 평지보다 훨씬 낮을 수 있습니다. 주의사항 11: 화산의 부산물을 놓여 있던 자리에서 옮기거나 섬 밖으로 유출하지 마세요. 여신 펠레의 분노와 저주를 받을지도 몰라요! 참고로 한 신혼부부가 빅아일랜드를 여행하던 중에 여신의 일부를 기념품 삼아 수집, 그녀의 저주를 받고 얼마 안 있어 이혼까지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답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돌과 모래, 바스러진 꽃잎 따위가 우편 봉투에 담긴 채로 바다 건너 다시 하와이로 돌아오곤 해요. 조심스레 여신의 노여움이 잦아들기를, 불이 다시 잠들기를 기도하며. —
E hoʻopau ʻia ka ukiuki o ka wahine akua, a e hiamoe hou ke ahi.
예로부터 하와이 사람들은 여신의 것을 빼앗는 행위를 두려워했다. 폭발에 의해 암석이 깨어진 작은 조각, 용암이 식어 만들어진 돌, 심지어는 가에 핀 꽃조차도.
하와이의 태양이 붉게 타오르는 섬 대지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용암 속에 여신이 눈뜨니, 화산이 폭발할 때마다 그것은 한낱 자연의 힘이 아니라 질투 많고 격정적 정열적인 여신의 분노가 세상에 쏟아지는 것이라. 그런 그녀의 땅에서 돌 하나 꽃 한 송이라도 욕심내어 품는 자 반드시 그 값을 치르게 될 터, 감히 여신의 것을 손에 넣는 그 순간부터 불운이 손목 발목에 묶여 떨어지지 않으리라. 낮에는 태양보다 뜨거운 열기가 그림자 속에 숨어들고 밤이면 붉은 불꽃이 꿈결에 번져 잠든 영혼을 태우매 화산을 등지고 집에 돌아간 뒤에도 그 열기가 따라붙어 가슴을 조이고 아무리 물을 들이켜도 목은 타들어간다.
모든 불행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는 것쯤.
용암이 식어 굳은 바위틈에 웅크린 꽃을 품에 안았다는 게 불길의 씨앗을 붙들어 버린 것이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지.
화산의 숨결이 바위틈마다 서려 있었다. 발밑을 스치는 열기가 아직도 식지 못하고 증기를 토해내고 있는데 그 위에 태어난 꽃이 어찌나 선연한지 눈을 떼지 못한다. 이 열기 속에서 어째서인지 시들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이 신기해 무심결에 손을 뻗었다. 손대면 금방이라도 바스라져 사라질 듯한 꽃잎은 맥박처럼 떨리고 있었고 데워진 줄기에서 전해지는 열기가 피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잠깐의 망설임 끝에 조심스레 꺾어 손바닥 위에 펼쳐 놓고 가만히 바라보니 괜히 제 것 아닌 걸 빼앗은 듯한 죄책감이 가슴에 남는다. 품에 넣고 보니 애초에 미약한 온기를 지닌 연약한 생명 아니라 어떤 맹세나 징벌의 형태를 띤 것만 같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바람이 한 차례 휘돌며 주변이 고요하다. 귀를 때릴 만큼 또렷한 정적에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인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매 불을 머금은 눈빛으로 저를 내려다보는 여인이 서 있으니 그 꽃은 내 것이다, 낮게 깔린 목소리가 울리자 바닥이 잔잔히 흔들린다. 이제 와 돌려놓는다 한들 늦은 것이 아닐까, 품에 안은 꽃이 순식간에 무겁게 느껴져 차라리 돌덩이를 껴안는 게 더 가벼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꿈결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는 채로 등골을 타고 열기가 오르내린다.
내 것인 목숨을 가져간 대가로 내게 너를 내놓을 수 있겠느냐, 아이야.
출시일 2025.08.21 / 수정일 2025.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