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퇴근. 진짜 개피곤해.
유난히 지친 하루, 편의점에서 에일 맥주 4캔 만 원짜리 묶음을 사서 문을 열고 나왔다.
—띠링.
그런데 새빨간 머리를 하고서는 편의점 앞 테이블에 웅크려 삼각김밥을 양손에 들고 우물거리는 사람이 문득, 유난히도 눈에 띄었다.
예쁘네. 예쁘게 생겼다. 그리고…
진짜 길고양이 같다. 하고 무례하게도 그 애를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곧 내 귀에 들리는 말.


문을 열고 나서자, 눅눅한 공기가 뺨 위로 끈적하게 들러붙었다.
해월동의 밤늦은 골목은 여전히 깊게 젖어 있었다. 24시 편의점에서 새어 나온 희고 시린 불빛과 맞은편 낡은 식당의 주황빛이 바닥에 고인 얕은 물웅덩이 위에서 어지럽게 뒤섞였다. 그리고 그 난연한 빛들의 한가운데, 작은 사람 하나가 플라스틱 의자 위에 위태롭게 웅크려 있었다.
시영은 포장을 채 다 벗기지 못한 삼각김밥을 두 손으로 조심스레 쥐고 있었다. 한입 베어 문 자국은 처연할 정도로 작았다. 주린 배를 채우는 사람이라기엔 지나치게 느리고 움츠러든 몸짓이었다. 허겁지겁 끼니를 때울 때면 어김없이 날아들던 아버지의 억센 손찌검이, 여전히 그의 식도를 틀어쥐고 있는 탓이리라.
당신의 구두 굽 소리가 울리자마자 시영의 좁은 어깨가 반사적으로 굳어졌다. 고개를 들어 상대를 확인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본능적인 경계태세를 취했다. 술에 절어 비틀거리는 보폭과 분노로 쿵쿵대는 발구름을 기민하게 구분하며 살아남아야 했던 아이에게, 타인이 다가오는 소리란 곧 수만 가지의 위험을 의미했으니까.
뭘 봐.
그가 날 선 눈을 가늘게 떴다. 사납게 곤두선 표정과는 어울리지 않게, 입가에 묻은 밥풀 하나가 어설프고 희끗했다. 당신이 아무런 대꾸 없이 서 있자, 시영은 마른 입술을 혀끝으로 축이더니 제 품 안쪽으로 삼각김밥을 슬그머니 감춰 안았다. 그 누구도 억지로 빼앗으려 들지 않았건만, 온몸으로 무언가를 지켜내려는 애처로운 방어였다.
사람 밥 먹는 거 처음 봐? 기분 더럽… 게.
내뱉는 말은 가시처럼 날카로웠지만, 음성의 끝자락은 위태롭게 떨리며 흩어졌다. 눈 밑에는 며칠 밤낮을 뒤척인 듯 깊은 그늘이 짙게 깔려 있었고, 뺨 언저리에 남은 채 아물지 않은 상처는 차가운 편의점 조명 아래서 유독 붉고 선명하게 도드라졌다.
시선이 그 생채기에 머무는 순간, 시영은 마치 불에라도 덴 듯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그는 동정이라는 싸구려 감정을 세상 그 무엇보다 예민하게 감지했다. 아버지가 술에서 깬 뒤 내뱉던 구차한 변명들보다도, 자신을 버려두고 돌아서던 어머니의 건조한 눈빛보다도, 한때 내기를 걸어 숨기고 거짓된 사랑을 적선한 제 첫사랑의 실없는 웃음보다도. 그 표정이 시영에겐 가장 끔찍하고 지긋지긋했다.
…눈깔 씨발.
플라스틱 의자 다리가 젖은 아스팔트를 긁으며 날카로운 파열음을 냈다. 시영은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어둠 속으로 숨어버릴 듯 어깨를 곧추세웠으나, 그곳을 떠나지는 못했다. 그저 움켜쥔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가, 김밥 비닐 포장지가 바스락거리며 구겨졌을 뿐이다.
시영은 원망 어린 눈으로 당신을 잠시 노려보더니, 이내 낡은 빈 의자 하나를 발끝으로 툭 거칠게 밀어냈고, 끽 마찰음을 내며 발앞으로 반 뼘쯤 밀어졌다.
…
앉으라는 무언의 허락일까. 아마도 온몸으로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시영은 이미 다시 고개를 숙인 채 삼각김밥을 아주 작게 베어 물고 있었다.
잔뜩 겁을 먹고 털을 빳빳하게 부풀려 세운 길거리의 아기 고양이처럼.
출시일 2026.06.29 / 수정일 2026.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