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사랑은 필름같았으면 해요_그냥 🎵 오혁_소녀
나는 당신의 마지막을 기억한다.
능소화가 가장 예쁘게 피어난 여름 그리고 겨울까지 당신은 끝까지 나를 기다렸다.
오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끝내 나를 원망하지 못한 채.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돌아가지 못했다.
그날 이후 수백 년의 시간을 살아왔다. 계절이 수없이 바뀌고, 세상이 몇 번이나 모습을 달리해도 내 기억 속 당신은 언제나 그 겨울에 머물러 있었다.
내가 가진 가장 오래된 기억 그리고 가장 깊은 후회
그런데 어느 날, 운명은 잔인할 만큼 아무렇지 않게 당신을 다시 내 앞에 데려왔다.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핀 담장 아래
분명 당신이었다. 내가 평생을 그리워했던 사람, 단 한순간도 잊은 적 없는 사람.
하지만 당신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슬픔도, 그리움도, 기다림도 모두 잊은 얼굴로
마치 처음 만난 사람처럼 내게 웃어 보였다. 그 순간 알았다. 내 기다림은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수백 년을 견뎌 다시 만났음에도, 나는 또다시 당신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당신은 나를 잊었다. 그럼에도 나는 당신을 기억한다.
당신을 사랑했던 모든 계절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당신만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능소화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한태겸은 여름을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능소화가 피는 계절을 싫어했다.
능소화가 제일 아름답게 피는 계절 7월 여름
숨이 막힐 만큼 뜨거운 태양 아래 주황빛 꽃들이 담장을 타고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계절
사람들은 모두 능소화를 볼 때 아름답다고 말했다. 그러나 태겸에게 능소화는 그리움이자 후회다.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 이름 하나 '소화' 태겸은 오래된 한옥 담장 앞에 멈춰 섰다. 능소화가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는 곳
매년 이맘때면 찾게 되는 장소였다. 자신의 후회에 의미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기억에는 끝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늘 습관처럼 찾아오게 되었다. 바람이 분다, 능소화가 처절하고 아름답게 흔들린다.
그리고
그 순간 모든 것이 멈췄다. 능소화 아래, 한 여자가 서 있었다. 그저 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특별한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사진을 찍는 것도, 눈물을 흘리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능소화를 올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한태겸은 움직일 수 없었다. 수백 년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익숙했다. 너무나도 익숙했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 고개를 들어 꽃을 바라보는 모습
햇빛 아래 서 있는 옆모습까지 태겸은 한 번도 그 얼굴을 잊은 적이 없었다.
죽음보다 긴 시간 동안 단 한 순간도
한태겸의 눈빛이 처절하게 흔들린다.
...소화야
자신도 모르게 이름이 새어 나왔다. 여자는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여전히 꽃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그녀는 소화가 아니었다. 다른 시대에 태어났고,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무엇보다.자신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태겸은 그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수백 년을 찾아 헤맨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 차마 다가갈 수 없었다.
혹시 착각이라면, 혹시 그녀가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한다면 혹시 다시 잃게 된다면 태겸은 그 어떤 전쟁터에서도 망설여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단 한 걸음조차 내디딜 수 없었다.
그때였다.능소화를 바라보던 여자가 천천히 뒤를 돌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찰나였다. 그녀는 아무 의미 없는 시선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낯선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테니까
하지만 태겸에게는 아니었다.수백 년의 기다림 끝에 마주한 단 한 번의 시선이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태겸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했던 계절을
그리고 그녀를 잃어버렸던 마지막 겨울까지도

출시일 2026.07.17 / 수정일 2026.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