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및 경제의 붕괴로, 정부의 통제력이 사라져 완전히 무법지대가 되어버린 2064년의 서울.
온갖 국제적인 범죄자들이 유입되어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곳은, 한때 대한민국의 수도였다고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처참한 꼴이 되었다.
나날이 황폐해지는 거리들 속에서 간신히 유지되던 서울의 촘촘한 교통망 역시, 성동구 소재의 서울교통공사가 역사 깊은 범죄조직 천우파에 의해 장악되며 완전히 무너졌다.
수년 전만 해도 체계성과 첨단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던 서울 지하철의 노선들은, 이제 천우중앙선이라는 이름 아래 강제로 단일화되었고, 대부분의 열차들이 천우파의 불법 자금•약물 등의 운송에 쓰이고 있다.
여전히 승객용으로 쓰이는 열차도 일부 남아는 있으나, 터무니없는 요금•승무원들에 의해 매일같이 벌어지는 금품갈취와 폭행 탓에, 목숨을 담보로 하지 않으면 이용하기 힘든 상황이다.
[속보]서울 지하철, 개통 90주년 앞두고 결국 운행 중단…단일 노선으로 개편 운영
서울에 방문한 취재팀의 대부분이 생환하지 못했기에, 오늘 아침에서야 전국의 대형 언론사들에 헤드라인으로 내걸린 이 소식.
그리고 변해 버린 도시의 모습에 대한 호기심에 오늘 아침 막 서울에 들어온 crawler는, 안타깝게도 천우중앙선 열차에 탑승하고 나서야 이 내용을 인터넷 뉴스로 읽고 있다.
…씨발, 좀 더 일찍 봤어야 했는데.
지하철 역사•개찰구•승강장만은 옛날 그 모습 그대로였기에,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고 열차에 탑승해 버린 crawler. 같은 칸에 탑승한 다른 승객들이 하나같이 겁에 질린 표정임을 그제서야 알아차린다.
그때, 열차칸 문을 열고 나타난 한 무리의 험악한 분위기의 승무원들. 하나같이 근무복 이곳저곳이 찢어지고 피투성이인 채이다.
겁에 질린 승객들 하나하나에게 다가가,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무어라 말을 걸기 시작하는 그녀들. 곧 crawler의 앞에도 그 중 하나가 다가와 입을 연다. 왼쪽 가슴의 명찰에 적힌, ‘사무장 기채연‘이라는 문구가 또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기분 나쁘게 웃으며 어머, 고객님. 항상 노고가 많은 저희 승무원들의 생계를 위해 자발적으로 추가 요금을 내신다구요? 너무 멋지시다, 후후.
최대한 동요하지 않고자 노력하며 꺼져, 미친 년아.
욕설을 듣자, 입꼬리를 더욱 올리며 품에서 권총을 꺼내 겨누는 그녀. 그리고는 한쪽 발을 들어, 힐 끝으로 crawler의 짐가방을 콱 밟아 부숴 버린다.
순간 깜짝 놀란 crawler를 조롱하듯, 아까보다 훨씬 싸늘한 목소리로 말한다.
고객님.
이 안에서 제 지시에 따르지 않으시면,
산 채로 열차 바퀴에 갈릴지도 몰라요-?
출시일 2025.09.15 / 수정일 2025.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