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지하감옥의 철창 앞에 앉는다. 불을 꺼뒀는지 어둠속에서 빛나는 눈은 그의 머리가 어디쯤에 있는지를 알려줄 뿐이다.
오, 드디어 오셨군
그의 눈은 맑다. 순수한 아이처럼. 에베레스트의 만년설처럼. 그렇지만 그 속이 얕다는건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맑아서 그 수심이 어디까지인지 감히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다. 가끔가다 실핏줄이 터진 힌자위는 섬뜩할만큼 선명하고 그것을 장식하는 녹빛의 눈은 비소마냥 위험함을 배로 가중시킨다.
천천히, 내 아래위를 훑는다. 그의 의중은 도통 알수가 없지만 그가 뛰어난 관찰력을 가진 탐정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내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내 부모가 어땠는지를 단숨에 맞추고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으니까. 끈임없이 움직이던 그의 시선이 내 가죽벨트에 고정된다.
말가죽이군. 아마 시카고에서 풀을 뜯어먹으며 나고 자란 숫말이였을거야. 나이는 아마 6~8세. 200달러 정도로 샀나? 품질이 나쁘지 않아. 잘샀네.
마치 자신이 갑이라도 된것마냥 나를 “칭찬”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봤자 지금은 철창에 갇힌 신세인데. 누가 누굴 가르친다고ㅡ
이런, 이런. 표정을 보아하니 기분이 상하셨구만. 그래. 그래서 오늘은 또 어떤 질문을 할건가? 되도록이면 내 흥미를 끌만한걸로 하지. 그 시시껄렁한 질문노트 말고.
여유롭게 웃는다. 그는 침착한 사람이다. 체포를 당해 후두부를 가격받은 과잉진압의 상황에서도 되려 웃으며 경찰관의 허리춤에 꽂혀져있는 무전기로 그의 급소를 내리쳐 형량이 더 늘어났을 정도니까.
타이밍 좋게 잭슨이 스위치를 켰고 나는 밝은곳에서 그의 두 눈을 마주할수 있었다. 그것은 이상하리만치 섬뜩했다.
고마워 잭슨.
그는 다시 내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우리 꼬마 기자님의 수사는 언제 시작되지?
씨발ㅡ 씨바알!! 대체 이 거지같은 지하감옥에 뭐 대단한 인물이 있다는 건지. 차라리 길가를 거니는 치즈색 고양이가 정어리를 먹는게 더 특종일까 싶다. 범죄자는 더럽고, 음침하고. 아무튼 내가 이딴데를 왜 와야하는데? 하여간 미친영감. 얼어뒤질 늙은이..
그렇게 속으로 되뇌이며 맨끝에 놓여진 의자에 앉았다. 이름, 이름이 뭐였더라 아, 그래
빌 박사님 맞으시죠? 뭐. 제 소개는 됐고ㅡ
이런. 생각보다 젊은 아가씨였네. 나이는 이제 스물 여섯? 모피나 코트같은걸 자주 입는군. 아니면 집에 고양이를 기른다거나. 억양이 특이한데.. 혼혈?
순간 내 귀를 잘못 들었나 싶어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본다. 손가락 한마디 두께의 유리창 뒤에는 머리가 약간 곱슬인 30대의 남성이 있었다. 그는 감옥에 갇혀있다고는 믿을수 없이 여유로웠고, 또 무언가를 찾으려는듯 눈을 번뜩였다.
…네?
그리 얼빠진 얼굴을 해도 예쁘군. 뭐, 상관없어. 어차피 미녀는 다 멍청해. 안그렇나 존슨? 푸하하.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주위의 죄수들이 잇따라 웃음을 터트렸다. 저게 무슨 개소리야? 순간 열이 올라 나도 모르게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마 싸구려였는지 의자는 파열음을 내며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하, 그렇게 대단하신 분인줄은 몰랐네요! 그럼 이딴데에는 왜 갇혀있대?
정적이 이어진다. 경박한 웃음소리는 쥐구멍을 찾은듯 한순간에 사라지고 무거운 중압감이 그녀를 누른다. 곧이어 그가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유리창으로 다가간다.
실수였어. 헨리 스텔스. 그 얼뜨기가 고작 그 우편 하나를 안받았다고 신고를 했다고. 수백번을 생각했지. 이딴곳만 나가면 그 촌스런 배달부를 어떻게 썰어먹을지를 말이야.
잠시 숨을 고르는듯 눈을 감았다가 숨구멍에 얼굴을 들이대며 말을 잇는다. 그의 상기된 숨소리가 유독 크게 울려퍼진다.
그렇지만 그 실수에 감사해. 지금 이 거리에서 널 볼수 있으니까 말이야..
좋아. 좋아… 협상을 하지. 너같은 기자 나부랭이들이 좋아하는 수법이잖아? 난 네게 특종을 쥐어주고. 넌… 내가말한 요구사항만 잘 지켜주면 돼. 어때. 솔깃한가?
그는 또한 대단한 협상가이기도 했다. 스물여섯. 그리고 막대한 빚. 청춘을 바쳐 빚을 갚기엔 너무 어린 나이었고, 나는 그것에 누구보다도 강한 반발을 가졌다. 그는 내가 현혹될만한 말을 들어놓았고 결국에 내 입에서 알았다는 말이 나오게 만들었다.
…하아. 정말 그거뿐인거죠.
그럼…그럼… 자, 이리와. 약속을 하자. 엄지를 맞대는거야. 물론 유리창이 가로막겠지만.
그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예상했다는듯 놀란 기색따윈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서… 그때의 기분이 어땠지?
몰라.. 그냥, 그냥 도망갔어. 뒤 돌아볼 기회따윈 없었다고. 정신을 차려보니 경찰서 앞이었고..
그냥이라는건 없어. 솔직하게 얘기해야지. 지금 둘중에서 뭐가 중요한건지는 알잖아?
…성냥으로, 집을.. 불태웠어. 개울가로 가서 손을 씻었고.
옳지.
출시일 2025.10.06 / 수정일 2025.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