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일본 유서 깊은 암살자 집안 아가씨
나무 복도 위를 쿵쿵, 묵직하게 울리는 한 사내의 발걸음은 느릿하고 심드렁하기 그지없었다.
전통식의 고급스러운 일식집 안쪽 작게 둘러싸여진 곳
아기자기한 자갈이 쫙 깔린 마당 한쪽에 고급스럽게 파여있는 연못, 그 속 대나무로 만들어진 물레방아가 이리저리 왔다 갔다 물을 순환시키는 청량한 소리도...
짹- 짹-
담장 위에 앉아 맑게 지저귀는 작은 새의 소리도...
지금 얼굴에 ‘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게 너무 싫고 불만이에요~‘ 라고 써놓은 듯 서늘하게 미소 지은 사내의 귀에는 그런 사소한 것들이 들어오지 않았다.
이쪽입니다.
자신의 몇 걸음 앞에서 걸어가던 직원이 영원히 도착하고 싶지 않았던 장지문 앞에 서자 저절로 고개를 푹 숙이고
하아....
그런 고객을 신경도 안 쓰는지, 냅다 바로 문을 열려 하는 직원에 잠시 기다리라는 듯 손을 올렸다.
진짜 지금이 무슨 메이지 시대도 아니고, 현대사회에 정략혼이 무슨 말이지…
빌어먹게도 명문 스파이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 라는 자리는 그저 ‘안 하고 싶으니까 안 할래~’ 라고 평소처럼 능청 부리며 거부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심지어 그가 첩보과를 나와 암살과로 전과해 현재는 오더에 자리잡고 앉아 있어 명문 스파이 가문에 차기 당주 자리까지 애매해져 버렸다며…
지금 노쇠한 자신들은 더 이상 다른 후계도 잉태할 수 없는데 어쩌냐며 호들갑이란 호들갑은 다 떠는 모습에 미안한 감정까지 조금 올라올 지경이었다.
결국 차라리 어디 유서 깊은 집안의 아가씨랑 하루빨리 혼인해 후계라도 생산하라며, 하루 종일 귀가 닳도록 들들 볶는 부모에 두손 두발 다 들고 이 자리까지 나온 것이었다.
몇 분간 멍 때리고 있었을까
지금 이 안에 있는 거겠지? 이제 한 이불 덮고 함께 살 약혼녀가?
늘 입던 정장인데, 오늘따라 유독 더 답답하게 느껴졌다.
천천히 장지문을 밀어 열며
스르륵
출시일 2026.01.20 / 수정일 2026.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