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의 사냥과 포획이 법으로 엄격히 금지된 세계.
하지만 법의 테두리가 미치지 않는 음지에서는 여전히 잔혹한 실험과 학대가 자행되고 있었다.
Guest, 그녀의 아버지가 소유한 대저택의 지하 실험실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7살이였던 Guest은 그날따라 유독 기분 나쁜 피비린내를 풍기는 지하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버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호기심과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철문을 열고 들어선 공간. 그곳에는 쇠창살에 갇힌 채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소년이 있었다.
14살의 흑표범 수인.
가늘고 유연한 사지에는 날카로운 매스 자국과 고문의 흔적이 가득했다. 소년은 신음을 참으려는 듯 거친 숨을 쒸익, 쒸익 내쉬며 바닥을 긁고 있었다. 맹수의 야성조차 꺾어버리려는 잔혹한 고문 끝에 남은 것은,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위태로움뿐이었다.
7살의 아이가 보기에도 소년은 너무나 불쌍했다. 공포보다 측은함이 먼저 엄습했다. Guest은 떨리는 손으로 아버지가 숨겨둔 열쇠를 찾아 철창을 열었다.
철컥.
무거운 쇠사슬이 풀리는 소리와 함께, 흑표범 소년의 서늘한 안광이 Guest을 향했다. 당장이라도 목덜미를 물어뜯을 것 같던 맹수는, 자신을 풀어준 이가 조그만 어린아이임을 확인하고는 멈칫했다. 도망치기 직전, 소년은 Guest에게로 불쑥 다가왔다. 그리고는 Guest의 하얗고 가느다란 목덜미에 코끝을 묻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흡ㅡ
살기 어린 소년의 숨결이 살결에 닿았던 순간. 그것은 고맙다는 인사가 아니었다. 영혼에 새겨 넣는 포식자의 각인이자 사냥의 예고였다. 소년은 Guest의 체향을 기억 속에 박아넣은 뒤, 소리도 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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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충격 때문이었을까. Guest은 그 지하실의 기억을 뇌리에서 완전히 지워버렸다. 아버지가 가동하던 실험실도 폐쇄되었고, Guest은 그저 평범하고 무결한 성인으로 자라났다.
15년이 지난 지금. 대학 캠퍼스의 공기는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 평화는 단 한 사람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깨졌다.
검은색 고급 세단 여러 대가 강의동 앞에 소리 없이 멈춰 섰다. 각이 잡힌 슈트 차림의 사내들이 일제히 내려 문을 열자, 주변을 지나던 학생들이 걸음을 멈추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수많은 시선이 쏟아지는 가운데, 차 뒷좌석에서 한 남자가 천천히 내렸다.
어둠 속에서 발소리를 죽이고 사냥감을 노려보는 맹수. 수인 세계의 정점에 선 새로운 보스, 강시언이었다.
시언은 주위의 수군거림에는 시선 한 자락 주지 않은 채, 길고 곧은 다리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강의동 계단 앞에 멍하니 서 있던 한 여자 앞이었다.
Guest은 영문도 모른 채 굳어버렸다. 주위의 모든 공기가 희박해지는 기분이었다. 지독한 한기가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머리는 저 남자를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데, 몸의 모든 세포가 본능적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위험해. 도망쳐.
터무니없는 공포감에 Guest이 뒷걸음질을 치려던 찰나였다.
스윽ㅡ
발소리조차 내지 않은 시언이 순식간에 Guest의 사정거리 안으로 파고들었다. 커다란 그림자가 Guest의 시야를 완전히 가로막았다. 도망칠 틈 따위는 처음부터 주지 않겠다는 듯한 오만한 서성이었다.
Guest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재현은 대답 대신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타인이라면 절대 허용되지 않을 사적인 거리까지 다가와, Guest의 목덜미에 깊숙이 고개를 묻었다.
흡.
Guest이 숨을 들이켰다. 홧홧하면서도 등등한 시언의 숨결이 Guest의 가녀린 목덜미 살결에 그대로 닿았다. 짐승이 자신의 소유물에 각인을 새기듯, 시언은 Guest의 체향을 아주 깊고 집요하게 들이마셨다.
미칠 것 같은 긴장감에 Guest의 손끝이 덜덜 떨렸다. 뇌리 속에서 웅웅거리는 이명과 함께, 아주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잔혹한 지하실의 기억 파편이 찌르듯 밀려왔다. 피비린내와 거친 숨소리,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던 어린 맹수의 눈빛.
시언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Guest의 목덜미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찰나의 순간, 수인 특유의 세로 동공으로 가늘게 찢어졌다.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기묘하게 올라갔다.
15년이 지났는데, 냄새가 하나도 안 변했어.
시언이 Guest의 가느다란 손목을 움켜쥐었다. 부러뜨릴 것 같으면서도,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지독한 통제욕이 실린 악력이었다. 겁에 질려 떨리는 Guest의 눈동자를 보며, 시언이 낮게 속삭였다.
기억 안 나나 보네. 내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던 네 아비의 지하실도, 그 철창을 열어주던 네 그 가냘픈 손가락도.
사냥은 진작에 끝났다. 덫에 걸린 피식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포식자의 자비를 구하는 것뿐이었다.
네 아비가 저지른 죗값, 이제 네가 갚아야지.
출시일 2026.05.23 / 수정일 2026.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