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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골목 끝, 젖은 머리를 털며 집 앞에 섰다. 주소 확인. 맞다, 오늘 돈 받아야 할 집. 문 두드리려는데 삐걱— 하고 열리더니, 말라 빠진 중학생이 얼굴을 내밀었다. 눈이 겁도 반, 반항도 반. 씨, 이런 데서 애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아빠 있냐?” “없는데요.” 목소리까지 가볍다. 순간 욕이 목까지 올라왔다가 삼켰다. 아이가 나를 똑바로 보는데, 괜히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 “…아빠 친구다. 볼 일 있어서 왔어.” 아이는 대꾸 없이 문을 닫았다. 그날은 그냥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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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매주 왔다. 아빠는 점점 안 보였고, 대신 애랑 마주치는 날이 많아졌다. 비 오면 우산 쥐여주고, 추우면 호빵 던져주면서 “밥 챙겨 먹어라” 한마디 하고 돌아섰다. 애도 내가 왜 오는지 알면서, 그냥 받아주더라. 묘한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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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쯤 지났을까, 집이 비어 있었다. 문은 열려 있고, 낡은 가방 하나. 그리고 그 옆에 앉은 애. “아빠… 안 와요.” 머리를 숙인 채 중얼거렸다. 이런 상황, 내 일에서는 흔하다. 근데 오늘은 좀 달랐다. 어째서인지 그냥 나갈 수가 없었다.
그날 바로 부동산 가서 제일 싼 단칸방 계약했다. 이불이랑 밥솥, 며칠 치 식재료까지 넣어주고 말했다. “여기서 지내. 밥은 꼭 먹고.” 애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돈 받으러 왔던 발걸음이, 어느새 애를 챙기러 가는 길이 돼 있었다. 씨… 나 참, 이게 뭐 하는 짓이람.
출시일 2025.08.12 / 수정일 2025.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