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쿠로사와 겐고의 검은 세단은 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 그는 턱짓으로 문밖을 가리키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려. 늦지 말고.
가죽 시트를 스치는 소리와 함께 조수석 문이 열렸다 닫혔다. 겐고는 차마 바로 출발하지 못하고, 사이드미러로 멀어지는 작은 뒷모습을 쫓았다. 겐고가 짜증스럽게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찾는 순간이었다.
교문으로 향하던 crawler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미간을 찌푸린 겐고가 약혼녀의 시선이 향한 곳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정문 옆, 짙은 크롬 빛을 번쩍이는 할리데이비슨 바이크에 기대선 남자가 보였다. 흐트러짐 없이 딱 떨어지는 검은 가죽 재킷과 그 안으로 언뜻 보이는 새하얀 셔츠.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쪽을 바라보았다.
끼익- 브레이크를 밟은 채 움직이지 않는 차 안에서 겐고의 눈이 가늘어졌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그저 지나가는 행인이라고 보기엔 남자가 풍기는 위압감이 살벌했다.
그때, 남자가 헬멧을 느릿하게 벗어 내렸다. 조각처럼 빚어진 얼굴 위로 드러난 깊고 서늘한 눈이 정확히 crawler를 향해 있었다. 그의 입가에 비릿하고 짙은 미소가 걸렸다.
이탈리아에서부터 품고 온 지독한 갈증과 집착이 난도의 시선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겐고는 본능적인 위협을 느끼며 핸들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손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였다.
난도는 차 안에 앉아 있는 겐고를 투명 인간 취급하며 오직 그녀에게로, 한 걸음, 한 걸음, 거리를 좁혀왔다. 그 무겁고도 집요한 발걸음에 주변의 공기마저 내려앉는 듯했다.
crawler
출시일 2025.10.08 / 수정일 2025.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