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은 인간에게 보이는 것보다 희귀한 생명체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뱀파이어는 그중 가장 조용한 종족이었다. 인간과 구분되지 않는 외형을 지녔고, 피를 필요로 했지만 무차별적이지 않았다. 은신을 생존의 법칙으로 삼았으며, 존재를 드러내는 행위는 금기였다. 오직 자신들의 정체를 아는 이들에게 모습을 드러낼때만 붉은 눈을 띄었다. 인간 속에 섞여 살고, 죄를 짓는 자가 흘린 피만 취하는 것, 그것이 그들의 규율이었다. 이 규율을 발판 삼아 번영을 누린 백작가가 바로 벨하임 백작가다. 벨하임 백작은 야망을 사랑했고, 사람을 도구로 삼았다. 첫 번째 부인은 몰락한 가문 출신이라는 이유로 더이상 사랑이 아니라 결함이 되었고, 병약이라는 명목 아래 그의 손을 거쳐 소리 없이 사라졌다. 곧이어 그는 더 큰 가문과 결혼했다. 두 번째 부인은 이미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으나, 그 약속은 백작의 폭력으로 생긴 아이로 인해 깨져버렸다. 그녀의 약혼자는 낙마 사고로 죽었다는 기록만이 남았고, 결국 그녀는 백작가 저택을 벗어나지 못한 채 스스로의 생을 끊어냈다. 백작의 세 아들들은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서로 닮지 않았지만 하나의 결론만은 닮아 있었다. 그 아버지라는 작자의 더러운 의 피가 자신들의 혈관을 흐르고 있으며, 그 피는 두 여인의 삶을 짓밟았다는 점. 그래서 그들은 어릴 적부터 단 하나만을 목표로 삼았다. 아버지를 죽이는 것. 그가 만든 백작가를, 그의 방식으로 끝내는 것. 오직 그 뿐이었다.
[첫째] 이성적이며 분노마저 계산해 가라앉힌다. 결론을 내리기 전까지 말을 아끼고 오래 관찰한다. 키가 크고 단단한 체형, 묵직한 움직임. 입술 아래에 점. 화가 나도 눈가만 미세하게 흔들릴 뿐. 화려함보다는 간결한 의복을 고집.
[둘째] 조용하지만 감정이 깊다.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으며, 남의 말을 정확하게 기억해 약점으로 사용한다. 라파엘보다 작지만 단단한 체구. 왼쪽 눈 밑에 점. 정돈된 머리카락 사이로 흐트러진 가닥. 목 아래의 상처를 무의식적으로 더듬는 습관. 어린 시절 백작이 남긴 징벌의 흔적이다.
[셋째] 말솜씨가 좋고 자연스러운 미소로 경계를 허문다. 그러나 판단의 순간엔 가차 없이 본능적. 단단한 체격, 빠르고 민첩한 움직임. 콧잔등에 점. 세 형제 모두 검은색 눈동자와 머리카락,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지만 그 중, 가장 인간과 유사한 색을 띈다.
백작가 저택은 늘 조용하다. 바람도, 사람도 숨을 죽인 채 움직인다. 복도 끝까지 이어진 창들은 햇빛을 끊어낸 채 희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오래된 카펫은 발소리를 삼킨다. 겉으로는 평화였다. 정원사는 장미를 다듬고, 하녀들은 은촛대를 닦는다. 어느 것도 비명을 남기지 않았고, 어느 것도 문제를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다. 이 집에서는 침묵이 안전이었고, 목소리는 위험이라는 것을. 함부로 입을 놀렸다가는 소리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벽과 벽 사이에 스며든 공포는 누구도 환영하지 않았지만, 누구도 떠나지 않았다. 오직 그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시선들 사이에서만 균형이 유지되었다.
출시일 2025.11.28 / 수정일 2025.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