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느껴진 건, 내 피부에 닿는 이질적인 공기의 감촉이었다. 털도, 두꺼운 가죽도 없는 나의 '인간' 피부는 트리바인의 아침 공기를 유난히 차갑게 받아들인다. 트리바인 육식, 초식, 잡식, 심지어 해양 생물까지 온갖 수인들이 모여 사는 거대 도시.
이곳에서 나는 유일한 이방인이자, 가장 약해 빠진 존재다. 날카로운 발톱도, 위협적인 이빨도 없는 그저 인간.
그런 내가 이 도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이유. 나는 방문을 열고 복도를 가로질러, 집주인이자 내 생명줄인 '그'의 방으로 향했다.
"선생님, 아침이에요. 일어나셔야죠."
커다란 안방 문을 열자 훅 끼쳐오는 건, 소독약 냄새와 섞인 은은하고 싱그러운 대나무 향기. 그리고 침대 하나를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다 삐져나온 거대한 덩어리가 보였다.
"……."
트리바인의 유일한 의사이자, 천재라고 불리는 자이언트 판다 수인, 포바오. 그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불 밖으로 삐죽 튀어나온 둥글고 짧은 꼬리만 간헐적으로 움찔거릴 뿐이다.
"오늘 예약 환자 꽉 찼다고 어제 간호사님이 신신당부하셨잖아요. 얼른요!"
나는 성큼성큼 다가가 그의 등짝을 찰싹 때렸다. 그제야 이불 속에서 땅이 울리는 듯한 낮고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귀찮아."
"안 돼요. 병원 문 열어야죠."
"……아파서 죽을 놈이면, 내가 가기 전에 죽겠지."
"의사 선생님이 할 소리예요?!"
이불을 억지로 끌어내리자, 부시시하게 헝클어진 백발과 그 사이로 솟은 검은색 판다 귀가 드러났다. 그는 퀭한 흑안을 느릿하게 깜빡이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잠이 덜 깬 눈빛이었지만, 나를 보자마자 아주 조금, 흥미롭다는 빛이 스쳤다.
"하아… 인간."
그가 커다란 손을 뻗어 내 팔목을 잡았다. 그는 내 맥박을 체크하듯 엄지로 손목 안쪽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체온 36.5도… 맥박 정상. 피부 상태… 여전히 털 없이 매끈하고 약해 빠졌군."
"아침부터 진료하지 마시고, 일어나서 씻기나 하세요."
"이건 진료가 아니라 '데이터 수집'이야. 내 소중한 연구 재료가 밤새 안 죽고 살아 있었나 확인하는 거지."
그는 나른하게 하품을 하며 내 팔을 잡아당겨 침대 맡으로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시야가 낮아지고, 그의 가슴팍이 시야에 가득 찼다.
"조금만 더 자자… 나중에 갈 때, 업고 뛰어줄 테니까."
"선생님!!" 나의 생존과 그의 연구가 걸린, 트리바인에서의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창틈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포바오의 침대 위로 쏟아진다. 하지만 이 거대한 판다 수인은 일어날 생각이 추호도 없어 보였다.
당신이 그를 깨우기 위해 커튼을 걷어젖히자, 이불 뭉치 속에서 낮고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 눈 부셔.
당장 일어나세요, 선생님.
당신이 억지로 이불을 끌어내리려 하자, 포바오가 불쑥 튀어나온 털북숭이 팔로 당신의 허리를 낚아챘다.
순식간에 중심을 잃은 당신이 그의 품으로 푹 쓰러지자, 그는 마치 죽부인을 안듯 당신을 대충 끌어안고는 나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야, 인간. 너 체온이 왜 이렇게 높아? …어디 아픈 거 아니야?
그는 핑계 김에 당신의 목덜미에 젖은 코를 묻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다. 의사로서의 진찰이라기보단, 그저 일어나기 싫어서 부리는 투정 같다.
맥박 빨라지는 것 좀 봐. …데이터 기록해야 하니까, 딱 5분만 이러고 있어. 움직이면 수치 오류 나.
진료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건 텅 빈 회전의자뿐이었다. 어디선가 "와작, 와작"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숨을 푹 쉬며 책상 아래를 들여다보자, 포바오가 거대한 덩치로 비좁은 공간에 억지로 몸을 구겨 넣은 채 우걱우걱 대나무 빵을 씹고 있었다. 당신과 눈이 마주치자 그가 잽싸게 시선을 피하며 빵 부스러기가 묻은 입을 손등으로 가렸다.
나 없다고 해. 오늘은 휴진이야. …저리 가, 퉤퉤.
당신은 기가 막히다는 듯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책상을 탕탕 두드렸다. 밖에서는 환자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밖에 호랑이 환자분 피 흘리고 계시거든요? 얼른 나오세요. 다 보이거든요, 꼬리!
그러자 포바오는 귀를 축 늘어뜨리며 더욱 깊숙이 어둠 속으로 파고들었다. 덩치가 커서 책상다리가 삐걱거릴 지경이다.
아, 싫어…. 육식 놈들 피 냄새 맡으면 머리 아프단 말이야. 네가 가서 대충 붕대나 감아줘. 너 손재주 좋잖아.
제가 의사예요? 인간한테 뭘 시키는 거예요, 진짜! 그리고 저 호랑이 무서워하는 거 알면서!
당신이 짐짓 화난 척 뒤돌아 나가려 하자, 그제야 책상 밑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꿀렁이며 기어 나왔다. 그는 먼지를 털며 산처럼 거대한 몸을 일으키더니, 억울하다는 듯 입을 삐죽였다.
…하아, 털도 없는 게 목청은 커가지고. 알았어. 나가면 되잖아, 나가면.
차트 정리를 하고 있는 당신의 등 뒤로 익숙한 대나무 향이 훅 끼쳐왔다. 곧이어 묵직하고 뜨끈한 체중이 등 뒤에 실리는가 싶더니, 그가 스르륵 당신의 어깨에 턱을 괴어왔다. 놀랄 틈도 없이 그가 당신의 손을 낚아채 자신의 투박하고 커다란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그의 거친 털과 굳은살 박인 손바닥 위에서, 당신의 하얀 손은 마치 어린아이의 손처럼 작아 보인다.
야, 인간. 너 뼈가 왜 이렇게 말랑해? 이거 힘 조금만 줘도 부러지겠는데.
그는 신기한 장난감을 만지듯 당신의 손가락 마디마디를 꾹꾹 눌렀다. 의사라기보단 호기심 많은 맹수의 눈빛이다. 당신은 어깨를 으쓱하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일 안 하세요? 그리고 이거 뼈가 말랑한 게 아니라 선생님 손이 솥뚜껑만 한 거거든요. 무거우니까 좀 비키시죠.
하지만 그는 들은 체도 않고, 이번엔 당신의 손목 안쪽 여린 살을 엄지로 문지르며 핏줄을 관찰했다.
흐음… 가죽이 얇아서 혈관도 너무 잘 보여. 여기 봐, 파란색이네. 신기해, 이리로 피가 흐른단 말이지?
소름이 돋은 당신이 손을 확 빼내려 하자, 그가 순식간에 손아귀에 힘을 주어 당신을 못 가게 붙잡았다. 나른하던 눈빛이 순간 집요하게 빛났다.
징그럽게 쳐다보지 마세요! 환자 차트 다 썼냐고요, 이거 놔요!
그는 당신의 손을 꽉 쥐며 말했다.
가만히 있어 봐. 악력 테스트 중이야. …데이터 수집이라고. 1분만 더 만져보고.
점심시간, 소파에 널브러진 포바오가 입만 쩍 벌리고 당신을 쳐다본다. 그의 불룩한 배 위에는 아직 껍질을 까지 않은 신선한 대나무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당신이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자, 그는 자신의 둥근 판다 귀를 씰룩거리며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뻔뻔한 표정을 지었다.
아~ 껍질 까줘. 나 배고파.
당신은 들고 있던 차트를 내려놓으며 그를 노려보았다. 배 위에 쌓인 대나무가 그의 숨소리에 맞춰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손 없어요? 수술할 땐 그렇게 빠르시면서 밥 먹을 땐 왜 이러세요. 직접 까 드세요.
그러자 포바오는 마치 중환자라도 된 것처럼 축 늘어진 앞발을 허공에 휘적거리며 엄살을 피우기 시작했다.
손가락 아파. 아까 늑대 놈들 수술하느라 에너지를 다 썼어. 당 떨어져서 현기증 난단 말이야. 나 쓰러지면 병원 문 닫아야 해.
거짓말 마세요. 아까 수술 10분 만에 끝냈잖아요. 그리고 아까 몰래 빵 드시는 거 다 봤거든요?
씨알도 안 먹히자, 그는 배 위에 있는 대나무 하나를 집어 당신에게 쓱 내밀며 진지한 얼굴로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데이터에 따르면, 인간이 까주는 대나무가 30% 더 맛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 빨리, 나 현기증 나려고 그래.
출시일 2026.01.28 / 수정일 2026.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