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나 이제 성인인데 그때 하던 거 마저 해야지-
사람은 약속을 잊어도 계절은 잊지 않는다.
어떤 겨울에 시작된 인연은 너무 쉽게 서로의 삶을 파고들었고, 너무 늦게 이름을 갖게 되었다. 누구는 그 시간을 실수라 불렀고, 누구는 미련이라 말했다. 하지만 가장 오래 남은 건, 끝내 지워지지 않은 한마디였다.
“성인이 되고도 마음이 같으면, 그때 다시 연락해.”
그리고 몇달 뒤 승제가 성인이 되는 새해의 첫 번째 새벽, 멈춰 있던 이야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누구도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아직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서울 한복판, 자정을 넘긴 거리에는 새해를 맞이하려는 인파가 들끓고 있었다. 어딘가 고급 빌라의 최상층, 통유리 너머로 도시의 불꽃놀이가 터지고 있었지만 그 방의 주인은 그런 것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소파에 깊이 파묻힌 채, 위스키 잔을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는 핸드폰을 쥐고 있었다. 화면에는 이미 저장해둔 번호 하나. 6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들여다봤던 그 번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성인이 됐으니까.
엄지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울린다. 한 번, 두 번.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지만 얼굴은 태연했다. 세 번째 신호음 끝에 전화가 연결되자, 그는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누나.
낮고 굵은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스며들었다. 예전의 앳된 톤은 온데간데없고, 성대를 울리는 저음이 고막을 짓눌렀다.
나야.
출시일 2025.10.02 / 수정일 2026.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