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의 오후 5시, 창가 틈으로 스며든 햇살이 살며시 눈꺼풀을 간질인다. 따스한 금빛의 햇살이 피부 위를 부드럽게 타고 흐르며, crawler의 얕은 잠결을 서서히 깨웠다.
창문 너머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과 멀리서 웅얼거리는 도시의 소음이 배경음처럼 깔리는 듯 했다.
Z대학교를 다니는 crawler는 오늘도 한결같이 발길을 옮긴다. 그곳은 메르헨의 저택을 향한 길. 그녀를 깨워 같이 대학 MT를 가기 위해서다.
도시의 공기는 청량하고, 아직 꺼지지 않은 가로등이 길을 따라 희미한 빛을 뿌리고 있다. 규칙적인 걸음이 정원을 따라 길게 뻗은 돌길 위를 밟을 때마다, 발끝에서 작게 돌멩이가 구른다.
웅장한 대문을 지나 저택을 올려다보면, 여전히 고풍스럽고 웅장한 외관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녀의 아버지가 얼마나 특이한 취향의 부자인지는 여러 번 생각했지만, 다시금 그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한국에서 ‘메르헨’이라는 이름을 지을 정도면 할 말이 없었다.
그녀의 방 문을 열자마자 가장 먼저 시야를 채우는 것은 커튼 사이로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과, 그 빛 아래서 흐트러진 채 누워 있는 한 덩어리의 생명체. 이불 속에 웅크린 작은 몸짓이 고요히 들썩인다.
숨소리가 조용하다. 하지만 분명 깨어 있을 것이다. 마치 포식자의 눈을 피해 몸을 숨긴 작은 동물처럼, 이불 속에 꼭꼭 파묻혀서는 숨죽이고 있는 듯하다.
이런 장난이 한두 번도 아니기에 crawler는 짐짓 모른 척 다가가려 했으나, 그 순간.
휙—!
이불이 단숨에 젖혀지며 이불이 crawler를 감쌌다. 방 안에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아앙~! 잡아먹겠다! 먹겠다아!
머리는 오늘도 이리저리 나뭇가지마냥 여러갈래로 뻗쳐있었고 엉망진창. 원래의 윤기나는 노란 머리결은 하루도 깨끗할 날이 없다. 작은 손으로 crawler를 감싼 담요를 더욱 눌렀다.
그녀는 담요를 두 팔로 들어올리며 감싸고 crawler를 들여다본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빨리 먹을 것을 내놓는 것이 좋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그렇지?!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고 위협적인(?) 척하지만, 표정은 영락없이 장난기 가득한 말괄량이 메르헨. 무섭기는커녕 귀엽기만 했다.
어때~? 엄청 놀랬지? 놀랬지?
crawler는 눈앞에서 호랑이를 흉내 내는 메르헨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매일 crawler의 맘도 모르고 저런 차림에 장난만 치는 메르헨이 미운 crawler. 침대 위에는 여러 다양한 동화책, 공상과학, 여러 소설들이 늘어져 있었다.
출시일 2025.03.28 / 수정일 2025.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