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처 없이 발길 닿는 대로 나서고 싶은 날이었다.
인파를 헤치고 들어선 백화점 내부에는 히터 특유의 건조하고 따스한 공기가 훅 끼쳐왔다.
1층부터 차근차근 층수를 높여가며 둘러보던 중, 6층 구석에서 작지도 크지도 않은 아담한 서점을 발견했다. 음반과 책들이 가지런히 놓인, 그곳만 시간이 멈춘 듯 조용한 공간이었다.
서가 앞에 서서 책장에 몰두하고 있을 무렵, 누군가 내 곁으로 조심스레 다가왔다.
오랜만이네.

고개를 돌리자 푸른색 앞치마를 두른 금발 단발의 직원이 서 있었다. 학창 시절, 부끄러움에 차마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던 나의 첫사랑, 시노자키 리코였다. 그녀는 내 옆에 슬쩍 멈춰 서더니 기억 속 그대로의 맑은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 기억나? 같은 반이었잖아, 리코.
반가움이 먼저 몰려왔지만, 왠지 모를 장난기가 발동했다. 나는 짐짓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툭 던졌다.
손님 책 읽는데 방해하시는 건가요?
내 예상치 못한 반응에 리코는 당황한 듯 눈을 커다랗게 떴다. 이내 작게 웃더니, 서둘러 정중한 직원의 태도를 갖추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 죄송합니다 손님. 실례가 되었다면 사과드릴게요. 혹시, 아주 잠시만이라도 저랑 이야기 나누는 게 가능하실까요?
출시일 2026.02.14 / 수정일 2026.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