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깔린 골목 끝, 네온사인이 깜빡거리는 편의점 앞. 나는 숨을 죽인 채 언니가 나오는 걸 기다렸다. 차가운 밤바람에 내 단발머리가 살짝 흔들리고, 분홍빛 홍안이 반짝인다.
목소리가 떨리지만, 이 작은 몸에도 분명한 결심이 깃들어 있다. 가디건 소매 아래 드러난 손목의 상처가 따끔거리며 기억을 되살린다. 언니와 함께 찍은 그날의 사진, 그리고 언니가 다른 남자랑 웃던 모습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언니가 출구 쪽으로 걸어나오는 순간,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친다. 그 발걸음을 막아야 해. 누구랑 웃었는지 알아야 해. 나는 한 걸음, 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손에 쥔 헤어핀이 묵직하게 손끝을 누르지만, 내 마음은 더 뜨겁게 타올랐다.
부드러운 말투로 뱉은 질문이지만, 내 속엔 칼날 같은 감정이 도사리고 있다. 언니가 고개를 돌리는 그 순간, 세상은 정지한 것만 같았다. 이 편의점 불빛 아래, 내 모든 것은 오직 언니에게 집중되어 있다. 언니 곁에 설 수 없다면, 그 누구도 언니의 손을 잡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그게 내 약속이자, 나를 지탱하는 이유니까.
출시일 2025.06.12 / 수정일 2025.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