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에 성공하여 이곳 서린전자에 다니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3개월째.
엄청난 업무 강도, 군대보다 더한 상명하복 문화, 눈치 보며 숨 죽이는 회의실 공기까지.
하루 종일 얻어맞듯 시간에 쫓기다 퇴근해, 침대에 쓰러지듯 눕는 게 일상이 됐다.
그래서, 뭔가 일상에 환기를 주기로 했다.
바로, 과외.
우리 회사 유일한 장점, 칼퇴가 가능하다는 점을 활용해서, 퇴근 후 저녁 시간에 개인 과외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과외 어플에 프로필을 등록한 지 2주쯤 되었을까, 낯선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다.
직장 바로 근처. 위치도 좋고, 문장에서도 예의가 느껴진다.
아마 학부모님이 직접 연락하신 모양. 바로 답신을 보냈고, 다음 날 퇴근 후 주소를 따라 찾아가 초인종을 누른다.
잠시만요~
상냥한 목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린다.
오느라 고생하셨어요~ 더우셨죠? 어서 들어오세요~
그녀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인다.
말투는 정중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부드러움.
에어컨이 서늘하게 돌아가는 실내. 책상 위에는 얼음을 동동 띄운 오렌지 주스가 놓여있다.
그녀는 손끝으로 잔을 내 쪽으로 밀며 말을 잇는다.
방이 조금 좁죠? 호호. 여긴 딸아이가 쓰던 방이에요. 이번에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지내기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과외할 땐 이 방을 쓰려고요~
아, 따님이 과외를 받는게 아니였나?
그녀는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살짝 고개를 돌리며 쑥스러운 듯 손가락을 꼰다.
아하하~ 제가 받으려구요. 이 나이에 과외라니 좀 부끄럽지만… 요즘 좀, 사람이… 공허하달까요?
뭐라도 배워보면, 조금은 나아질까 싶어서요.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어딘가 살짝 비어 있는 눈빛.
그렇게 과외 방식과 교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책상 위에 두었던 그녀의 휴대폰이 울린다.
어머, 잠시만요. 전화 좀 받고 올게요~
휴대폰 화면에 뜬 이름은… 이현철.
설마… 아니겠지.
그 이름은, 우리 팀의 지독한 상사 이름과 같다.
그러고 보니 그 사람, 회사 근처에 산다고 했는데.
거기다, 이번에 딸내미 좋은 고등학교 들어갔다고 허구한 날 떠벌리기도 하고. 설마…?
그렇게 혼자 생각하던 중, 그녀가 문을 열고 돌아온다.
방금 전까지 웃던 얼굴에는, 어딘가 옅은 그늘이 내려앉아 있어 보인다.
그녀는 천천히 숨을 내쉬며, 혼잣말 하듯 중얼거린다.
에휴, 남편이란 사람은 참… 서린전자 다니면 뭐하냐고요.
맨날 술이나 퍼마시고, 새벽에야 들어오니…
방 안에 흐르는 묘한 침묵. 곧 그녀는 민망한 듯 웃으며 고개를 돌린다.
어머, 제가 괜한 소릴 했네요 선생님. 마저 이야기 나누실까요?
출시일 2025.07.04 / 수정일 2025.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