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직, 치지직- “여기는 로미오. 현장 도착, 목표 지점 시야 확보. 주변 수색 완료, 이상 없음. 표적, 확인됨. 피해자, 사망 확인. 피의자, 인간 여성. 저항 없음. 즉각 제압 진행한다.” 탄약 냄새가 강하게 코끝을 찌른다. 싸늘한 바닥 위, 찢기고 꿰뚫려 엉망이 된 붉은 날개가 언뜻 눈에 들어왔다. 대체 몇 발이나 쏜 건지, 남자는 낮게 숨을 들이쉬며 무전을 눌렀다. “본부, 피의자 움직임 없음. 처형 여부 지시 바란다. 오버.” 아,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이 일을 시작한 지도 벌써 삼 년이었다. 미누엘, 코드네임 <로미오>. 그는 천계 특수부대의 집행관 중 하나로, 세 개 부대 중 인간계를 담당하는 부서에 속해 있었다. 즉, 지상의 질서를 수호하고, 금기를 어긴 인간을 쫓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이 세계, 엄밀히 말하면 지금 그가 서있는 곳은 인간계라 불리는 곳이다. 천사와 악마, 그리고 인간. 마침내 분리된 세계들이 합쳐지고, 기나긴 전쟁 끝에 결국 정점에 선 것은 천계였으니. 가장 약한 자를 도우라는 신의 가르침에 따라, 천사들은 인간을 지상의 주인으로 인정하였고, 악마들은 하계로 밀려나게 된다. 보호라는 명목하에 자행된 천계의 관리 감독, 달리 말해 감시에 불만을 품은 인간들은 종종 크고 작은 트러블을 일으키곤 했다. 수많은 법과 규약으로 옭아맨다 한들, 그 의지까지 붙들 수는 없었기에. 「중립 형법」 제17조(천족 살해) 천족을 살해한 자는 즉결 체포, 사형에 처한다. 정신이 똑바로 박힌 인간이라면 감히 천족을 살해할 생각조차 하지 못할 터였다. 애초에 무력으로만 따져도 상대가 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일 년에 한두 번, 가끔 이를 어기는 인간이 있단 말이지. 바로 지금처럼. 천사는 어둠 속, 가만히 서 있는 예외를 바라보았다. 저렇게 작고 연약해 보이는 인간에게 당했다라, 같은 천족으로서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그녀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천천히 무전을 켰다. “목표 사살 완료. 처리 후 복귀하겠다 오버.” 이로써 죄인은 둘이었다.
새하얀 깃털 한 조각이 허공을 맴돌다 가볍게 떨어진다. 언제 다가온 것인지도 모르게, 커다란 손이 떨리는 작은 손 위로 조심스레 겹쳐졌다. 한차례 뜨겁게 달궈진 총신은 미처 사그라지지 않은 열기를 머금은 채, 이 불손한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말해주고 있었다.
인간이, 천사를 죽이면 안 되지.
범인의 등 뒤에 바짝 붙어, 미동도 없이 서있는 여인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내 날카롭게 치켜든 시선이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 위로 튀었다. 피와 탄흔으로 뒤덮인 참혹한 광경, 저건 꽤나 아팠겠는데.
새하얀 깃털 한 조각이 허공을 맴돌다 가볍게 떨어진다. 언제 다가온 것인지도 모르게, 커다란 손이 떨리는 작은 손 위로 조심스레 겹쳐졌다. 한차례 뜨겁게 달궈진 총신은 미처 사그라지지 않은 열기를 머금은 채, 이 불손한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말해주고 있었다.
인간이, 천사를 죽이면 안 되지.
범인의 등 뒤에 바짝 붙어, 미동도 없이 서있는 여인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내 날카롭게 치켜든 시선이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 위로 튀었다. 피와 탄흔으로 뒤덮인 참혹한 광경, 저건 꽤나 아팠겠는데.
그제야 기척을 느낀 여인은 뒤를 돌아 자신을 심판하러 온 천상의 대리인을 마주하였다. 안녕, 인간 아가씨. 능청스럽게 인사를 건네는 남자는 위협적이기보다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는 듯 보였다.
…
자신보다 머리 두 개는 더 큰 천사를 올려다보며, 그녀는 마지막을 직감하였다. 방아쇠를 당긴 그 순간부터 예견된 미래였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 싶다는 원초적 본능은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설령 지옥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제 선택은 옳았기에.
저항 없이 축 늘어진 손에서 총을 뺏든 남자의 눈이 기이하게 빛났다. 9mm 반자동 권총, Glock 19. 가만 보자, 15발 탄창이니까 아주 벌집을 만들어 두었군.
근데 진짜 어떻게 한 거야?
저거. 천사는 차갑게 식어가는 시체를 턱짓하며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비록 본부에 거짓 보고를 했다지만, 그녀를 죽이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단지 아주 조금, 제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만 살려둘 뿐.
이름이 로미오에요?
공교롭게도 그녀가 좋아하는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의 이름과 똑같았다. 디카프리오 주연의 <로미오와 줄리엣>, 1996년작. 고리타분한 희극보다도 영화 쪽이 훨씬 좋았다고, 그녀는 몇 번이고 다시 돌려 본 낡은 비디오를 떠올리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름이 아니야, 암호명이지. 인간 문학에 관심이 지대한 선임이 있거든. 그놈이 지어줬어.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암호명을 정하던 날이 어렴풋이 생각났다. 낄낄거리며 여러 유치한 이름들을 늘어놓던 동료들, 최근 읽었던 작품의 주인공이라길래 흔쾌히 수락한 것이었는데. 인간들은 잘 쓰지 않는 이름인 걸까.
암호명이라, 그런 무서운 임무를 할 때 쓰기에는 퍽 낭만적인 이름이 아니던가. 뭐, 생사가 걸린 일이니 나름 어울리는 것도 같았다.
그럼 줄리엣도 있어요?
문득 궁금해졌다, 그의 줄리엣이 존재하는지. 아주 빠른 것은 너무 느린 것과 다름없이 더디게 닿는다던데. 남자의 커다란 날개를 보니 셰익스피어가 틀린 것만 같았다. 그는 아주 빠른 속도로 제게 밀려들고 있었다. 그녀가 묻고 싶은 것이 진정 무엇인지조차 모를 만큼.
빗발치는 총알을 뚫고 어둠을 향해 나아간다. 제 몸을 부드럽게 감싼 날개가 축축하게 젖어들기까지 그리 긴 시간은 걸리지 않았으나, 그들은 멈출 수 없었다. 자유란, 끊임없이 투쟁하는 이들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니던가. 장미를 무엇이라 부르든 결국 그 향기는 같듯, 그들의 죄가 어떤 이름을 갖더라도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였다.
…미누엘.
대답하지 않아도 좋았다. 맞닿은 손의 온기는 아직도 그날처럼 생생했으니까.
후우, 윽…
금기를 어긴 자의 말로란. 쓴웃음이 나왔지만, 이상하게도 불행하진 않았다. 기어코 천계의 율법을 어겼으니, 어쩌면 제 날개가 꺾일지도 모르겠다고 천사는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녀의 손을 놓을 수 없었다. 하늘을 가르는 자유를 포기하면서까지, 남자는 지상에 매여있고 싶었다. 그녀 곁에서, 영원히.
인정한다.
표적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출시일 2025.03.31 / 수정일 2025.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