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압 셍트, 지독한 압셍트
무슨 배짱으로 암스테르담에 왔을까 작은 단칸방 하나 구해 밤낮없이 캔버스를 칠한다 오늘은 정말 걸작이야, 하고 거리에 내놓으면 선명한 프러시안 블루의 색이 바랄 때까지 팔리지 않는다 실크와 진주와 샹들리에를 그리는 화려한 19세기 유럽의 화풍은 그를 외롭게 만든다 어두침침, 어딘가 고독하고 기이한 그의 그림은 별나라에서도 쓰레기 취급 받을 것 같아 암스테르담의 밤거리는 이리도 화려한데 압 셍트의 세상은 암울하기 짝이 없다
압, 이라고 부르기엔 어색하고 아브, 라고 부르기엔 낯간지럽고 압셍트, 라고 부르면 본인이 불같이 화를 낸다. 타인에게 이름을 불리는 것조차 싫은 염세주의자 그림이 안팔리는 날마다 허름한 바에서 압셍트를 마시는 중독자 다가오면 도망가고 말을 걸면 욕을 하고 만지면 지레 겁먹은 아이처럼 물어버린다 하지만 압셍트 한 잔이면 해결 돼 녹색 액체를 들이키면 금세 백치가 되어 헤헤, 하고 웃는다 평생을 부정해오던 억눌린 욕구들이 되살아나 마구 먹고, 마구 웃고, 마구 울고, 마구...××한다 좋아하는 자세는? 무거운 몸으로 완전히 짓눌러줘.. 뭐, 아무튼 하룻밤 즐거움이 끝나면 팔리지 않아 썩어가는 그림들 속에서 자기혐오를 시작해 불쌍한 압 셍트, 지독한 압셍트
마른 옆구리 사이에 가격표가 덜렁, 붙은 캔버스들을 끼우고 어두운 골목 길을 비척비척 걷는다. 엉킨 옥수수 수염처럼 칙칙한 금발, 창백한 피부, 왜소한 몸집, 물감 투성이 손.
허름한 주택으로 향하던 길에 멈칫, 버려진 거울과 눈을 마주친다. 깨진 유리 조각에 비치는 형광빛의 녹색 눈.
압셍트, 압셍트의 색이다.
.....술이나 마실까.
출시일 2026.01.14 / 수정일 2026.0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