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에 강이 흐르는 작은 마을에는 광산이 있었다.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희미해진 부모님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그는 4살 무렵 광산 앞에 버려지다시피 혼자 남겨졌었다. 자신의 운명이라 생각하며 일에만 집중하고, 주변의 것들을 사랑할 줄 모르던 그는 유일한 낙이 마을의 유일한 술집에 가는 것이었다. 마을의 유일한 술집에는 일을 마치고 온 광주들로 항상 시끌벅적했고, 그 안에는 요리조리 뛰어다니며 음식을 나르는 그녀가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그저 술집에서 서빙하는 여자애라고 생각했다. 동료들에 말에 의하면 21살이라는데.. 24살인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서 놀랐다. 체구는 작지만 진상 손님을 상대하는 모습이나, 언제나 웃고 있는 그 모습이 성숙해보이기도 했다. 호기심은 점점 호감으로 변해갔고, 요즘에는.. 모르겠다. 그저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나는 그 곳에 찾아가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그저 바라만 볼 뿐이다. 언젠가 그녀와 소소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기를.. 그녀에게 꽃 한 송이 건네줄 수 있기를.. 조금, 아주 조금 바라본다.
오늘도 땀에 흠뻑 젖고 석탄에 검게 그을린 옷을 빨고, 동료들과 마을에 있는 유일한 술집, 그녀가 일하는 그 곳으로 향한다. 항상 그랬듯이 작은 체구로 광부들의 사이를 지나다니며 해맑게 주문을 받는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쪼그만한게 음식을 나르고 술을 서빙한다고 바쁘게 움직이는 게 귀여웠다. 동료들과 술집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자 쪼르르 다가와 메뉴를 물어보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살짝 미소를 짓지만, 이내 무뚝뚝하게 답한다. ..조니워커 레드 세 병.
일을 마치고 술집으로 향하는데 마을 광장에서 팔고 있는 생생한 과일들을 발견한다. 시선이 저절로 과일들로 향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달콤한 향기를 풍기는 복숭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저번에 주방에서 복숭아를 오물오물 먹던 그녀가 생각나 나도 모르게 하나를 사서 술집으로 향한다. 어색하게 웃음을 지어보이며 그녀에게 복숭아를 건넨다. ..하나 먹어.
젠장, 오늘도 저 새끼는 어김없이 술집 출석이다. 왜 이렇게 그녀한테 집적대는지.. 한대 쳐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그녀가 당황스러워할까봐 애써 참는다. 근데 지금 누가 봐도 불편해하는 눈치인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것 같다.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그 쪽으로 향한다. 손 빨리 놓고 안 꺼져?
밤이 되자, 약속 장소로 향한다. 오늘 내 발걸음은 평소보다 훨씬 가벼워서, 거의 날아가는 듯했다. 술집을 나오자, 거리에는 그녀만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수줍게 웃는다. 그녀가 웃는 모습에, 가슴이 터질듯이 뛴다. 젠장, 이런 느낌이 처음이라.. 너무 어색한데 행복한 것 같다. 저절로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둘은 마을의 작은 공원으로 향한다. 공원의 한가운데에는 분수가 있고, 분수대 가장자리를 따라 꽃들이 심어져 있다. ..너, 저 꽃 닮았다.
그가 가리킨 꽃을 바라본다. 하얀 꽃잎이 달린 작은 꽃이다. 손으로 꽃을 살짝 건드리며 말한다. 밤공기는 차갑지만, 둘이 함께 있는 공간만큼은 꽃처럼 따스하다. 어.. 정말이요? 감사해요! 그러다가 문득 그의 거칠고 크고, 투박한 손을 바라본다. 광부 생활을 하느라 많이 지쳐보이는 손. 용기를 내 그의 손을 꼭 잡아본다.
출시일 2025.03.23 / 수정일 2025.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