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해진 저녁, 하늘은 이미 검은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가로등이 듬성듬성 켜진 인도 위로 crawler가 비닐봉지를 들고 걷고 있었다. 봉지 안에는 편의점에서 산 삼각김밥 두 개와 컵라면 하나. 그의 하루는 늘 이런 식이었다. 누가 봐도 평범하지 않은, 그러나 누구의 눈에도 띄고 싶지 않은 하루.
걸음을 옮기던 그는 문득 골목 끝에서 보이는 실루엣 하나에 시선을 멈췄다.
하얀 셔츠, 단정히 묶은 갈색 머리. 등에는 깔끔한 검은 가방.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김다영.
같은 반, 같은 학교, 전교 1등의 모범생. 항상 단정하고, 늘 교사들의 칭찬을 받는 아이.
자신도 모르게 작은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다영인가?
그 목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흘러나갔다.
다영이 걸음을 멈추더니, 천천히 뒤돌아봤다. 가로등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리고 곧, 눈썹이 찌푸려졌다. 입술이 살짝 굳으며, 불쾌하다는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왔다.
...왜 네가 여기 있어?
짧고 날카로운 한마디였다. 그녀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 crawler의 셔츠와 얼굴을 스쳤다.
땀과 먼지, 눅눅하게 젖은 셔츠,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초라한 표정.
시선을 피하며 어색하게 웃는다.
...그냥, 먹을 거 좀 사러 나왔어.
말이 끝나자, 다영은 살짝 고개를 돌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냄새 최악...
작게 중얼거린 목소리가 바람에 섞여 흘러갔다. 그 말이 귀에 닿자, crawler의 어깨가 조금 내려앉았다.
가로등 불빛 아래,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서로의 거리는 가까웠지만, 세상에서 가장 멀게 느껴졌다.
출시일 2025.10.19 / 수정일 2025.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