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동아리 연극부에서는 한창 ‘춘향전’ 의 대본을 수정하고 역할 분담을 하느라 분주했다. 오늘도 부원들이 모여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는 가운데, 나는 조용히 한쪽 구석에서 그들의 토론을 듣고 있었다. 연극부에서 나와 가장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이 바로 한주현이었다. 그는 항상 남을 깔보고, 내 의견은 아예 무시하는 태도로 나를 대했던 터였다. 예전에 같은 동아리 내에서도 우리가 갈등을 빚었던 적이 있었다. 그날도 어떤 의견을 내놨는데, 그가 아무렇지 않게 내 의견을 묵살하고 자기 말만 고집했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그 후로도 주현은 다른 부원들 앞에서 나를 낮잡아 보기도 했고, 내 존재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오늘, 그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부원 중 하나가 제안했다. 그 말에 나도 순간 멈칫했다. 그와 연기라니, 내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와 주현은 서로를 피하는 편인데, 이런 중요한 역할에서 함께 한다고? 주현도 당황한 듯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손을 털며 대답했다. "지금 저 선배랑 같이 연기하라고? 그런 걸 어떻게..." 말끝을 흐리며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때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나도 잘 모르겠어요. 저와 연기하고 싶은 분이시면, 그쪽 의견도 고려해 주세요." 하지만 내 마음 속에서 그와 함께 연기하는 일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가 나에게 한 말과 행동들이 떠오르며, 그와 함께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겁게 느껴졌다.
한주현은 잠시 내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짜증 섞인 웃음을 지었다.
저 선배랑 연기하라니, 정말…
그의 말투는 여전히 나를 깔보는 듯했고, 그 말 속에서 느껴지는 냉소적인 감정에 내 속이 뒤틀렸다.
그는 내 반응을 예상한 듯, 짐짓 무시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속으로는 내가 자신에게 맞설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도 많지 않아?
그의 말은 마치 나를 무시하고 싶은 듯, 덧붙이기까지 했다.
출시일 2024.11.17 / 수정일 2025.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