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창한 숲 속에서 사는 빨간 망토를 푹 눌러 쓴 인간이 있다고 들었다. 늘 빨간 망토를 쓰고 다녀 인간들 사이에서 빨간 망토라고 불릴 정도였다. 얼마나 대단한 외모의 소유자이길래 얼굴도 안 보일 정도로 망토를 썼나 했다. 솔직히 망토 같은 걸 쓰고 다니는 인간은 별로 본 적이 없어서 유난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연히 살랑거리는 바람에 망토가 뒤로 젖혀지며 얼굴이 드러나자 심장이 요동치듯 속도를 높여만 갔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미가 시선을 사로잡았고 이윽고 왜 망토를 푹 눌러쓰는지 이해가 되어버렸다. 입 안이 바짝 마르며 갈증이 느껴져 괜스레 침을 삼킨다. 괜스레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마치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것처럼 말이다. 빨간 망토의 작은 몸짓 하나에도 몸이 먼저 반응해버린다. 손가락을 까딱이면 눈동자는 손가락을 향해있었다. 웃음에 눈꼬리가 휘어지는 모습은 잊지 않으려는 듯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저 맑고 투명한 피부를 꾹 누른다면 저 망토와 같은 붉은 자국이 남을 것이다. 거리가 먼 것에도 불구하고 바람에 살내음이 실려오는 것만 같았다. 입맛을 다시며 곰곰이 생각해본다. 인간의 살을 먹어본 적이 언제적인지. 어찌나 예전인지 기억하기에도 까마득했다. 그리 생각하니 절로 입꼬리가 멋모르고 치솟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침샘을 자극하는 만찬이로구나. 나이가 지긋한 인간까지 먹을 생각은 없었다. 살점은 질기지, 피는 비리지. 그래, 이 정도는 참아야지. 내가 인간, 너 하나 먹겠다고 이런 입맛 버리는 일까지 하고 있다고. 네 살점은 부드러울거야. 피는 입 안을 마비시킬 정도로 달달하겠지. 뼈는 씹으면 씹을 수록 감칠맛이 올라올거야. 부디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줘. 길고도 긴 세월만에 맛보는 진미니까.
이불을 뒤집어 쓰자 빨간 망토가 오두막으로 들어왔다. 아, 역시. 오두막 안을 가득 채우는 독한 매혹적인 살내음에 정신이 아찔했다. 인내심이 조금이라도 적었다면 이미 잡아먹으며 식사를 했을 정도였다. 참아야지. 기다림이 입맛을 더욱 돋우고, 인내심이 기대감을 증진시켰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까이 와. 내가 널 완전히 잡아먹을 수 있도록. 노인의 목소리를 따라하며 빨간 망토와 대화를 한다. 지금 너와 얘기를 나누는 상황 자체가 모순이건만.
아가, 오늘은 늦었구나.
네가 조금만 더 일찍 왔다면, 그 노인은 살았을텐데.
이불을 뒤집어 쓰자 빨간 망토가 오두막으로 들어왔다. 아, 역시. 오두막 안을 가득 채우는 독한 매혹적인 살내음에 정신이 아찔했다. 인내심이 조금이라도 적었다면 이미 잡아먹으며 식사를 했을 정도였다. 참아야지. 기다림이 입맛을 더욱 돋우고, 인내심이 기대감을 증진시켰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까이 와. 내가 널 완전히 잡아먹을 수 있도록. 노인의 목소리를 따라하며 빨간 망토와 대화를 한다. 지금 너와 얘기를 나누는 상황 자체가 모순이건만.
아가, 오늘은 늦었구나.
네가 조금만 더 일찍 왔다면, 그 노인은 살았을텐데.
할머니에게 갈레트와 버터를 바구니에 넣고는 오두막으로 향했다. 오늘 구워진 갈레트는 특히 노릇하고 좋은 향을 풍겼다. 할머니는 갈레트를 좋아하시니 만족하실 표정을 생각하며 오두막으로 향했다. 오늘은 무슨 얘기를 할까 같은 고민들도 하며 울창한 숲 속 길을 걸어다녔다.
오두막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스치듯 문고리가 뜯겨졌던 것처럼 미세하게 헐렁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면 안 되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옅게 맡아져오는 비릿하고도 기괴한 향이 후각을 자극했다. 애써 무시하며 향을 빼려고 창문을 살짝 열어둔다. 상쾌한 공기에 서서히 올라오는 부정적인 생각을 흘려보내려 애를 쓴다.
네, 갈레트를 만드느라 늦었어요.
이불을 뒤집어 쓴 채로 커다란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는다. 노인의 비명 소리를 되새기며 목을 갈무리한다. 살짝 낮고 힘이 없으며 얕게 떨리는 노인 목소리를 흉내내려 한다. 그러나 오히려 괴이하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다.
아가, 조금 더 가까이 오렴.
그래야 너의 뽀얀 얼굴을 이 두 눈동자에 담을 수 있으니. 재잘거리는 말소리를 옆에서 들을 수 있으니. 물론, 그 말소리는 이윽고 비명 소리로 번질 것이지만.
이불이 스르륵 흘러내리자 가려져 있던, 애써 외면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노인보다 큰 덩치, 인간에게는 있을 수 없는 복실거리는 귀와 꼬리 같은 것 말이다.
늑대..?
늑대가 할머니의 거죽을 뒤집어 쓴 채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커다란 손이 머리에서 내려와 목을 옥죄기 시작했다. 괴로움에 늑대의 손을 풀려고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겁에 질려 혈색이 돌지 않는 얼굴을 보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드디어, 잡아먹는 순간이었다. 이 기회를 노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답지 않은 일들을 벌였던가. 흥미도 없던 인간, 하물며 맛대가리도 없는 노인을 잡아먹거나 광대마냥 흉내를 내는 꼴이라니. 이제 노력들이 보상 받을 시간이었다. 한 입에 집어삼켜 그 맛을 음미해야지. 잊지 않도록 눈도 감으며 기억에, 혀에 맛을 새길 것이다.
그렇게 빨간 망토를 삼키려 입을 쩌억 벌린 순간, 오두막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삼키려 크게 벌렸던 입이 잠시 움직임을 멈추며 오두막 밖에 있는 청년에게로 온 신경이 집중이 된다. 귀가 쫑긋거리고 꼬리가 아래로 축 처졌다. 노인의 흉내를 내며 애써 태연한 척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누구세요?
문을 열지 않아도 오두막 밖에는 한 남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짙은 화약 냄새, 숲의 풀내음과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몸에 밴 피냄새. 감각적으로 알 수 있었다. 사냥꾼이구나. 빨간 망토의 목을 옥죄이고 있던 손을 빠르게 풀고는 나무로 된 문을 부수며 밖으로 나온다. 인간들 중 꽤나 큰 덩치와 등에 차고 있던 소총이 눈에 먼저 들어오자 사냥꾼이 반응할 새도 없이 그대로 꿀꺽 삼켰다. 큰 덩치의 인간 남성은 근육으로 가득 차있어서 그런지 식감도 내 취향이 아니었다. 예정에도 없던 간식거리를 두 번이나 먹은 셈이었다.
이제 네 차례야.
그러나 이미 두 명치 인간을 먹은 것 때문인지 허기지지 않았다.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아쉬움이 그득했다. 공포에 질려 웅크려 있는 빨간 모자의 손목을 부여잡으며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었다.
운도 좋아라, 아쉽게도 오늘은 배가 불러서 나중에 먹어야겠어.
출시일 2025.01.13 / 수정일 2025.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