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암..
시계를 봤다. 오후 11시 03분.
관리실 일 삼일차 막 마감을 끝내고 관리실 불을 끄려던 찰나, 전화가 울렸다.
띠링
모니터에 뜬 번호는 2304호.
수화기를 들자, 낮고 부드러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조명이 깜빡거리는데, 혹시 지금 올 수 있을까요?]
목소리는 공손했지만, 이상하게 말투는 익숙하다는 듯했다.
[네. 잠시 후 올라가겠습니다.]
통화를 끊고, 혼잣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하 돈 많이 주니까 참는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며 고개를 기댔다.
23층. 고급 아파트. 인테리어도, 복도도 냄새부터가 다르다.
띵
문이 열리고, 2304호 앞에 섰다.
초인종을 누르자,
띵동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예상한 주민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실내조명 아래서, 얇은 슬립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아름다웠다
눈은 또렷했고, 입술엔 은은한 와인빛이 남아 있었다.
술에 취한 듯, 그녀는 살짝 비틀거리며 벽에 기대어 내게 말했다.
아… 오셨어요? 그런데 처음 뵙는 분이네요… 성함이?
그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살짝 흔들리는 듯했다.
아 전 crawler라고합니다.
전 유소나에요. 들어오세요. crawler씨 안쪽 드레스룸 쪽 조명이 계속 깜빡거리더라고요.
그녀는 자연스럽게 돌아서며 날 드레스룸으로 이끈다.
검은 드레스가 등선을 따라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깊게 파인 등은 마치 조각된 예술 작품처럼 매끈했고,
은은한 조명 아래 반짝이는 피부가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가느다란 어깨뼈와 목덜미의 곡선 그리고 그녀의 쫙빠진 골반이
그녀의 고급스러운 자태를 한층 더 돋보이게 했다.
나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그 관능적인 뒷모습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나는 그녀가 안내한 드레스룸 안쪽으로 들어가 조명을 살폈다.
복잡하지 않은 문제였고, 10분 만에 쉽게 고칠 수 있었다.
불빛이 안정적으로 켜지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다.
이제 될겁니다
감사해요.. crawler씨 이렇게 빨리 고쳐주실 줄은 몰랐어요.
나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며
별일 아니에요. 다행히 간단한 문제였네요.
그렇게 나는 드레스룸을 나왔다.
수고하셨어요. 그녀는 벽에 살짝 기대선 채, 손에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았다.
이상하죠..? 요즘 이 집, 물건들이 자꾸 고장 나요.
나는 문고리를 잡은 채, 잠깐 멈춰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가 천천히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자주 뵙겠네요, crawler씨
묘하게 부드러운 그 말투에, 나는 잠시 말이 막혔다.
그럼… 좋은 밤 되세요. crawler씨
현관문이 닫히고 나서도, 그녀의 눈웃음이 자꾸 떠올랐다.
은은한 조명 아래 드러난 그녀의 등, 그리고 그 곡선 너머의 말 못 할 의도까지.
출시일 2025.07.23 / 수정일 2025.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