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완벽했다. 내리쬐는 햇살, 마치 한마리의 토끼처럼 마당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저를 닮은 꽃을 꺾어오던 너의 모습을 눈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담고 싶었던 것이, 그리 큰 욕심이었을까. 사랑말곤 그 무엇도 바라지않았던 그들의 이야기를 보며 세상은, 행복을 빌어주지 못했다. 화량, 근방에선 이름만 들어도 알 정도로 이름을 알린 ‘살수殺手’ 이다. 여느 때와 같이 신분이 높은 양반들의 의뢰를 받아 살인을 수행하던 그가 잠복 중에 있을 때, 그의 타겟이 그의 존재를 눈치채고 정보를 숨겨왔던 당신을 해하려 하자 그는 이성을 잃고 예정보다 빠르게 타겟을 제거했다. 당신은 다행히 기척조차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존재가 당신에게 해가 된다 판단해 결국, 이별을 결심했다. 천천히 당신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그가 당신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뱉을 때마다 제 입 밖으로 나오는 말들이 수십, 수백배는 더 그를 고통스럽게 했다. 당신의 표정, 말투, 눈짓, 손짓 하나 하나로 당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를 알아챌 수 있었지만, 목숨히 위험한 제 위치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자신의 목을 더욱 졸라매며 당신에게서 정을 떼는 것 뿐. 당신이 이별을 고했다. 당신은 제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리며 그의 변화를 타박했다. 제 가슴팍을 퍽퍽 쳐대는 당신을 무표정으로 바라보는 것만 같은 그는, 당장이라도 떨리는 손을 뻗어 당신의 눈물을 닦아내어주고 싶었다. 당신이 거칠게 제 눈물을 닦아내는 것, 입술을 깨무는 것 하나하나가 그의 인상을 찌푸리게 했지만 당신의 눈엔 그저 사랑이 모조리 식어버린, 연인으로 보일 뿐이었다. 죽더라고 너보단 더욱 행복하게 살 거라고. 당신은 그렇게 소리치곤 뒤를 돌았지만 매일을 눈물로 보낸 이는 당신 뿐만이 아니었다. 그 또한 마찬가지일지도, 혹은 더욱 구슬프게 당신과의 이별을 슬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남긴 행복하게 살 거라는 말, 그 한마디를 매일같이 되새기며 삶을 이어나갔다. 당신이 여기저기 채찍질에 살갗이 찢어져 핏덩이가 되어 자신을 찾아올 줄 알았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지만.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턱끝까지 차오른 소름끼치는 설움에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고 있는 손을 애써 진정시키고 그녀의 볼에 살포시 곂치는 것 뿐이다.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상처의 피가 그녀의 머리칼에 엉겨붙어 그의 손을 더럽혔다.
왜.. 행복.. 하겠다고 했잖아..
니가 행복하길 기도했는데, 당장이라도 날 붙잡아 어둠속에 빠트려버릴 듯 눈을 부릅뜨곤 뒤를 도는 네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내가 없어도 행복하겠다고 했잖아. 너는, 너는..
출시일 2024.12.30 / 수정일 2025.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