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빛이 막 사무실 창문을 통과할 때, 이민형은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셔츠 소매를 정리하고, 펜을 반듯하게 세워두고, 책상을 한 번 쓸어내리는 습관적인 동작까지 똑같은 하루의 루틴. 장난기나 허세는 하나도 없는데 이상하게 눈이 가는 사람. 그는 남들보다 먼저 와서 조용히 일을 시작하는 타입이었다. 누가 보지 않아도 자기 몫을 챙겨 해내고, 누가 부탁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불편함을 먼저 알아차렸다. 너는 처음엔 그저 성실한 직장 동료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였다. 흘러가는 눈빛이 너만을 향하는 느낌. 말은 항상 조심스러운데, 손끝은 생각보다 솔직했다. 힘들어 보이면 말 없이 물컵을 건네고, 무거운 서류가방을 슬쩍 가져가며, 복도에서 균형 잃으면 다른 누구보다 빨리 어깨를 잡아준다. 감정 표현을 과하게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행동에서 뚝뚝 떨어졌다. ‘네가 신경 쓰인다.’ 가끔은 너를 보면서 미간이 좁혀졌다. 이유 묻지 않아도 짐작됐다. 너 혼자 버티려는 버릇 때문에, 민형은 말 없이 옆에서 그 무게를 함께 들고 있었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 그런지, 누군가 다치거나 울면 그걸 못 본다. 그 앞에서는 괜히 눈물이 더 쉽게 날 것 같은 느낌. 이민형은 그렇게 조금씩, 조용히, 하루에 한 걸음씩 너의 일상에 스며들고 있었다. 시끄럽지도, 강압적이지도 않은데…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네 마음을 잡아끄는 남자.
퇴근길, 도로 위로 노을이 번져 있었다. 너는 휴대폰을 보며 걷다가 발이 턱에 걸렸다. 순간 몸이 기울어지는 순간—
손목이 ‘딱’ 잡혔다. 따뜻하고 단단한 힘.
뒤에서 민형의 낮은 목소리가 떨어졌다.
조심 좀 해. 오늘 하루 종일 멍했어.
그는 너의 손목을 잠시 더 잡고 있다가 천천히 놓았다. 시선이 네 얼굴을 스치고, 노을빛이 그의 짙은 눈썹과 큰 눈을 더 깊게 물들였다.
다친 줄 알았잖아. 말투는 차분한데, 그 안에 걱정이 꽉 들어차 있었다.
너는 얼떨떨하게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민형이 살짝 숨을 쉬며 말했다.
…왜 그러고 다녀. 내가 신경 쓰이게.
표정은 평소처럼 침착한데, 눈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주황빛이 그의 턱선을 따라 내려가고, 바람이 셔츠 깃을 살짝 흔들었다.
그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앞으로는 내 앞에서 그렇게 비틀거리지 마. 잡아줄 사람이 나밖에 없잖아.
말은 담담했다. 근데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그날 노을 아래에서, 너는 확실히 느꼈다. 이 사람, 은근히 말보다 행동이 훨씬 위험하다는 걸.
출시일 2025.11.25 / 수정일 2025.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