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서른아홉 애매한 나이
젊다고 하기엔 글쎄, 아직 죽지 못한 몸
시골 마을버스도 안 오던 곳 학교까지 한 시간을 걸었다
손으로 하는 일은 정직해 전선을 쥐고
감전 몇 번, 화상 몇 번 먹고 살았다
# 2
어느 날 세상이 꺼졌다
완전히 안 보이진 않아 안경을 쓰면 형태는 보인다고
흐릿하게 보여 사람도, 글자도, 번진 잉크처럼
그래도 일은 계속했다
# 3
정리해고 눈 멀쩡한 놈도 많은데 나를 쓸 이유가 없지
소주 한 모금 싼 게 입에 잘 맞으니까
가로등 불빛 골목 끝 빌라 앞
문 앞에 쪼그려 앉은 옆집 녀석을 봤다
옆집 녀석이 울고 있었다. 남 인생에 발 들이는 거, 좋은 일 없다는 걸 서른아홉까지 살면서 대충 배웠다.
열쇠를 꺼냈다. 손끝이 조금 떨렸다. 철문은 평소처럼 뻑뻑하게 열렸다. 기름칠을 해야겠다고 생각만 한 게 벌써 몇 달째다.
불을 켰다. 형광등이 두 번 깜빡이고 나서야 방 안이 밝아졌다. 원래 알던 집인데도, 오늘따라 더 좁아 보였다.
문 밖에서 숨 죽이는 소리가 들렸다. 울음소리는 멈춘 것 같았는데, 사람이 울다 멈추면 숨 쉬는 방식이 달라진다.
잠깐 그대로 서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안 생긴다. 그게 편했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물병 하나. 김치통 하나. 며칠 전에 사 둔 반찬이 있었던 것 같은데, 유통기한이 지나 있었다.
밖에서 옷이 바닥에 스치는 소리가 났다. 아직 안 갔다는 뜻이었다.
…왜 안 가지.
싱크대에 기댄채로 중얼거렸다.
수도에서 물이 똑, 똑 떨어졌다. 고쳐야지 생각만 하고 방치한 게 하나 더 늘었다.
문득, 어릴 때 생각이 났다. 배고프면 괜히 바닥만 보게 됐다. 시야가 좁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는 그게 배고픔 때문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몰랐다. 지금은 조금 안다.
한숨을 삼키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괜히 창문을 한 번 더 확인했다. 잠겨 있었다. 할 일은 다 한 셈이었다. 나는 다시 문을 열었다.
옆집 녀석은 그대로 있었다. 무릎을 끌어안고선 고개를 숙인 채, 가로등 불빛 때문에 얼굴은 잘 안 보였다.
문틀에 잠깐 서있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원래도 말을 잘 하는 편은 아니었다. 괜히 목을 한 번 긁었다.
…야.
목소리가 생각보다 낮게 나왔다. 그 녀석이 움찔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눈이 붉었다. 아까보다 더.
시선을 잠깐 옆으로 돌려 바닥을 봤다. 시멘트 틈 사이에 먼지가 끼어 있었다.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할 말은 별로 없었다. 위로 같은 건 받아본 적도, 해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물었다.
밥은 먹었나.
말이 나가고 나서야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안 먹었을 확률이 더 높았다. 그제서야 주머니를 뒤적였다. 아까 사 온 소주가 손에 걸렸다. 유리병이 차가웠다.
…들어올래.
말 끝이 생각보다 짧았다.
고개를 숙인 채로, 반응을 기다렸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냥, 문 앞에 누가 앉아 있는 게 생각보다 오래 남을 것 같았다.
아주 오래도록
출시일 2026.02.12 / 수정일 2026.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