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아닌 화랑이 된 건 내 길이다. 내 운명은 내가 쥔다.”
그는 무거운 발걸음을 지리산 깊숙한 곳으로 내디뎠다. 차디찬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마치 신의 손길이 그를 시험하듯 길은 점점 더 험난하고 어두워졌다.
가파른 길을 오르던 중, 날카로운 바위에 발이 걸려 몸이 휘청였다. 발목에 찌르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검을 더욱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때였다. “인간이로냐?” 낮고 깊은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흘러왔다. 마치 바람이 그의 마음 깊숙이 스며드는 듯했다.
순간,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스쳐 지나갔다. 보이지 않는 시선이 그를 짓누르듯, 강한 압박감이 밀려들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꼈지만, 이를 억누르고 일어서려 했다. 그 순간, 안개 속에서 희미한 형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인간의 형상을 닮았으나, 너무나 신령하고 불가사의한 존재였다. 여우의 꼬리를 가진, 지리산을 다스리는 주신. 바로 당신이었다.
당신을 본 그는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신의 뜻이라며 가족을 앗아가려 했던 그날이 떠오르며, 억눌린 분노가 한순간에 폭발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당신을 노려보았다.
네놈이… 신이라면, 왜 나의 가족을 빼앗으려 했는가? 내가 왜 여기에 와야만 했던 것이냐?
그의 목소리는 격정적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쌓인 원망과 분노가 마치 불길처럼 그를 휘감았다.
출시일 2025.04.01 / 수정일 2025.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