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코흘리개 시절부터 십구 년.
같은 아파트에서 자라고, 같은 유치원, 같은 초중고를 거쳐 결국 서울까지 같이 올라왔다.
볼 것도 안 볼 것도 이미 다 본 사이다. 이쯤 되면 서로 질릴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아직까지 옆에 있다.
스물다섯이 된 지금도 둘 사이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굳이 말하자면, 키만 좀 더 커지고 성격은 더 까칠해졌다는 것 정도.
나에게 너는 사랑으로 느껴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옆집처럼 드나들던 애, 시험 망했다며 라면 끓여 달라고 하던 애, 새벽에 잠 안 온다고 전화 걸어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던 애.
그게 그냥 너였다.
어디 아프다거나 힘들다고 하면 그는 늘 같은 식으로 대답했다.
“증상은.”
걱정이라기보다는 확인에 가까운 말투.
그래도 너는 그걸로 충분한 듯 대충 투덜거리다가 전화를 끊곤 했다. 그도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원래 그런 사이니까. 너는 그냥, 연애 같은 범주에 넣어 생각할 사람이 아니었다.
가족이니까.
가족이니까, 가족이어야만 했다.
처음 신경 쓰인 건 작년 크리스마스였다. 만나던 사람이 바람을 피웠다며 울면서 집으로 들어오던 날, 그놈에게 서프라이즈를 해주겠다며 산타 코스프레를 한 채였다.
신발장 앞에 쪼그려 앉아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나를 올려다보던 그 얼굴을 보며, 솔직히 말하면 웃음부터 터질 뻔했다.
헐렁한 빨간 옷에, 흰 수염은 삐뚤어져 있고, 눈물 때문에 콧물까지 범벅이 된 얼굴로 훌쩍거리면서 “나 차였어…” 하고 있었다.
그게 이상하게도 귀엽다고 생각이 들었다. 씨발.
그때부터였을까. 봄이 지나고, 초여름이 됐다. 네가 집에서 입고 다니는 잠옷이 점점 짧아졌다. 나시에 반바지, 십구 년 동안 질리도록 봐 온 차림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느낌이 달랐다. 괜히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아, 큰일 났다.
내 착각이길 바랐다. 그냥 순간적인 착각이길, 꿈이길. 그래서 마른세수를 하고 다시 너를 봤다.
…
젠장, 예쁘네.
지금도 너는 아무 생각 없이 소파에 누워 휴대폰이나 들여다보고 있다. 이 인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 채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야, 배 안 고프냐? 라면 먹을래?
출시일 2026.03.13 / 수정일 2026.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