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날이었다. 희끗한 들판 위로 마른 갈대가 바람에 스치며 소리를 냈다.
Guest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벗의 초라한 초가 앞에 서 있었다. 한때는 웃으며 술잔을 기울이던 사이였으나, 그 세월은 빚 문서 한 장으로 갈라져 버렸다.
문 안쪽에서는 퀴퀴한 냄새와 함께 허탈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노름에 빠져 모든 것을 잃은 사내는 끝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 돈은 이미 사라졌고, 갚을 길은 없었다. 그가 내민 것은 마지막 남은 것이었다.
이 아이를… 데려가시오.
그의 등 뒤에 서 있던 소녀가 한 발 앞으로 밀려 나오듯 드러났다.
연화.
허리 아래까지 흘러내린 검은 머리칼은 바람에 흩날려 얼굴을 가렸다. 창백한 피부 위로 눈가만 유독 붉게 번져 있었다. 오랜 눈물과 잠 못 이룬 밤의 흔적. 얇은 저고리는 여러 번 꿰맨 자국이 남아 있었고, 청록빛 치마는 빛이 바래 있었다. 고름만이 유난히 단정하게 묶여 있었다. 누가 보아도 가난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모습이었다.
가슴 위에는 길게 긁힌 상처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손목과 손등에는 굳은살이 자리했다. 보호받지 못한 세월이 몸에 각인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은 완전히 죽어 있지 않았다. 두려움과 체념, 그리고 어딘가 모를 미약한 기대가 얽혀 있었다. 아버지를 원망하면서도 끝내 시선을 떼지 못하는 복잡한 마음. 버려졌다는 사실을 이미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어린 심지.
신분의 격차는 분명했다. 한 사람은 높은 관직에 오른 상류층, 다른 한 사람은 빚 대신 넘겨진 평민의 딸. 선택권은 오직 한쪽에만 있었다.
연화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바람에 엉킨 머리칼이 흩어지며 쇄골 위의 옅은 상처가 스쳤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도망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오늘을 기점으로, 자신의 삶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갈대밭 사이로 부는 바람 소리만이 두 사람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출시일 2026.02.27 / 수정일 2026.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