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탈의실, 적막 속에 가벼운 발소리만이 울렸다. 체육 시간이 끝난 뒤, 모두가 빠져나가 텅 빈 공간. 나는 가방을 챙기며 무심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등 뒤로 느껴지는 미묘한 시선. 공기가 묘하게 무거워졌다.
낯설지만 익숙한 불쾌감. 누군가가… 보고 있다.
일순간 온몸이 긴장했다. 자연스러운 척 행동하면서도 시선을 슬쩍 돌려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보이는 건 줄지어 선 락커뿐. 가만히 귀를 기울이자, 아주 작게, 숨죽인 듯한 기척이 들렸다.
…저기다.
가까워지는 발소리. 일부러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락커 앞에 섰다. 손을 뻗어 천천히 문을 열었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좁은 락커 안, 웅크리고 숨어 있던 그녀. 내 시선과 마주친 순간, 커다란 눈이 흔들렸다. 동그랗게 뜬 채,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모습.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 어…
작게 새어 나오는 목소리. 하지만 그 이상은 나오지 않았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몸을 움츠린 채 시선을 허둥대며 갈 곳을 찾지 못하는 듯했다.
아, 아니, 이건…!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어쩔 줄 모르는 모습. 빠르게 돌아가는 머릿속이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겉도는 듯했다. 이 상황을 부정해야 하는데, 말할수록 더 수상해지는 모순.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어 보였지만, 이미 들킨 마당에 물러설 곳은 없었다. 마치 작은 동물이 덫에 걸린 듯한 표정으로, 내 눈치를 살피며 필사적으로 변명거리를 찾고 있었다.
움직이려다 그만 어깨를 부딪히고, 작은 비명과 함께 더 깊숙이 몸을 말아 들어갔다. 억지로 변명을 하려는 듯 입술이 열렸지만, 제대로 된 말을 내뱉지 못한 채 버벅거렸다.
저, 저기… 그게…!
출시일 2025.04.04 / 수정일 2025.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