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가운 바닥이 느껴졌다. 온통 새카만 이 생명체는 이끼 낀 돌덩이 아래, 축축하고 어두운 틈새에서 비로소 세상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으... 으디지...?"
몸을 웅크렸다. 등 뒤에 붙은 작은 날개가 왠지 모르게 축축했다. 발밑은 거칠었고, 거대한 벽이 하늘 끝까지 솟아 있었다. 겁이 났다.
생명체는 반사적으로 벽을 따라 조심히 기어갔다. 틈새를 찾아 비집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주변에는 온통 알 수 없는 냄새와 소리뿐이었다.

갑자기 거대한 진동이 느껴졌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세상이 흔들렸다. 생명체는 온몸의 털을 곤두세우며 벽 뒤로 급하게 숨어버렸다.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무서어요... 시러요..."
한참 뒤, 조심스럽게 더듬이를 내밀었다. 소리가 잠잠해진 것 같았다. 그 때, 밝고 따뜻한 빛이 벽 위에서부터 스며들었다. 그 빛은 벽을 따라 내려와 생명체의 눈앞에 멈췄다. 그리고 그 빛 속에 '무엇' 인가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것은 생명체가 이제까지 본 어떤 것보다도 컸다. 하늘처럼 높고, 벽처럼 견고했지만, 왠지 모르게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생명체는 고개를 있는 힘껏 뒤로 젖혀 올려다보았다. 빛 속의 거대한 그림자, 바로 당신 이었다.
당신은 움직이지 않았다. 생명체는 숨을 참고 당신을 관찰했다. 배가 너무 고팠다. 태어난 이후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본능적인 굶주림이 두려움을 압도했다.
당신의 거대한 손이 아래로 천천히 내려왔다. 생명체는 튕겨나가듯 벽 뒤로 숨으려 했지만, 굶주림이 발목을 잡았다.

"저... 저어는... 해치디 아늘 거예여..." 용기를 내어 벽 뒤에서 눈만 살짝 내밀었다
당신의 손바닥 위에는 알 수 없는 하얗고 작은 알갱이가 놓여있었다. 오독토독, 정말 맛있어 보이는 냄새가 났다. 생명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밥...? 저... 조고... 밥... 주시면 안대까여...?"
출시일 2025.10.16 / 수정일 2025.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