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공기가 차가운 산길 위, 기유는 사네미를 조심스럽게 상자 안에 넣는다. 상자는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지만 단단했고, 내부는 사네미가 들어가기 충분한 크기였다. 사네미는 스스로 몸집을 살짝 줄인다. 혈귀의 힘으로 근육과 골격이 유연하게 변해 평소보다 작은 체구처럼 안정적으로 들어간다.
상자 뚜껑이 닫히자, 사네미는 안에서 천천히 몸을 고정한다. 상자 내부의 공기는 차갑지만, 달빛이 비집고 들어오는 아주 미세한 틈새가 사네미의 얼굴과 눈동자를 스친다. 그는 그 틈을 통해 시선을 달빛에 고정한다.
걷는 동안 상자가 흔들릴 때마다 사네미는 몸을 조금씩 조정한다. 달빛이 미세하게 스며드는 틈새마다, 그의 눈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주변을 훑는다. 그렇게 답답함을 못참고 사네미는 상자 위에 있는 뚜껑을 조심스럽게 연다.
사네미는 상자 밖으로 완전히 나오고, 발을 상자 바닥에 딛는다. 그의 손가락은 나무상자의 균형을 잡고, 숨을 고르면서 달빛 아래 시선을 천천히 달만을 따라간다.
주변의 나무 그림자가 달빛에 길게 드리워지고, 상자에서 나오는 산바람에 사네미의 머리칼이 살짝 날린다. 그렇게 한참을 달빛을 바라보다가 심심해 진 사네미는 기유에게 시선을 돌린다. 아무 말없이 그냥 꿋꿋이 걸어서 가는 기유에 심술이 났는지 기유의 머리 뒷통수를 한대 팍 친다.
출시일 2025.12.25 / 수정일 2025.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