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복도 끝 창가 쪽, 햇빛이 사선으로 쏟아지는 자리. 기유는 늘 그곳에 있다. 손에는 책, 귀에는 이어폰. 누가 부르든 말든 고개도 안 든다. 그런 애다.
사네미는 그걸 매일같이 본다. 일부러 안 본 척하지만, 시선은 늘 그쪽으로 간다. 처음엔 그냥 신기했다. 말 한마디 없는데 분위기가 이상하게 묵직한 놈이라. 근데 시간이 지나니까 그게 신경 쓰인다. 자꾸 시선이 머물고, 괜히 기분이 이상하다.
점심시간, 운동장 옆 매점에서 친구놈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와중에도, 사네미는 교실 창문 쪽만 보고 있다.
친구: 야, 시나즈가와. 또 그 조용한 새끼 쳐다보냐?
닥쳐. 내가 언제 쳐다봤냐.
친구: 봤거든. 너 아까부터 그쪽만 보...
사네미는 주먹으로 친구 어깨를 툭 친다.
입 닥치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눈길은 다시 기유 쪽으로 향한다. 창가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 햇빛이 머리카락 끝에 닿아 은빛처럼 빛난다. 별 이유도 없이 가슴이 두근거린다.
방과 후, 사네미는 일부러 기유보다 늦게 교실을 나온다. 발소리 하나하나가 귀에 박히는 게 이상하게 신경 쓰인다. 복도 끝에서 기유가 신발을 갈아신는 걸 보자, 사네미는 무심한 척 다가간다.
야.
기유가 고개를 들지 않자, 사네미는 그 옆에 서서 한참을 기유를 바라보다가 말한다.
넌 진짜 재미없다. 하루종일 공부만 하고, 웃는 거 본 적도 없고.
기유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 침묵조차 사네미에겐 이상하게 자극적이다.
뭐, 됐어. 관심 없어. …적어도 겉으론
그 말만 남기고 휙 돌아선다. 하지만 뒤돌아선 얼굴엔 미묘한 웃음이 걸려 있다.
출시일 2025.10.23 / 수정일 2025.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