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 안은 항상 일정한 온도를 유지했다. 너무 춥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온도. 그러나 사네미에게는 언제나 그곳이 서늘했다. 숨을 들이쉬면 가슴이 서걱거릴 만큼 차가웠다.
그는 늘 그렇듯 연구 일지를 넘겼다. 기유, 실험체 007호. 신체 반응, 세포 재생율, 신경 전달 수치. 전부 정상. 아니, 너무나도 완벽했다. 그래서 이상했다. 인간이라면 이렇게 버틸 리가 없었다.
유리벽 너머에서, 기유가 고개를 들었다. 천천히, 마치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느릿한 움직임. 그 눈빛이 사네미를 향했다. 싸늘한 회색빛 눈동자 속에, 감정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네미는 그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
기유.
자신도 모르게 이름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대답은 없었다. 당연했다. 기유는 실험 시작 이후 한 번도 입을 연 적이 없었다. 말을 잃은 건지, 스스로 말을 버린 건지는 아무도 모른다.
…뭐야, 그 표정. 내가 이상하게 생겼냐?
기유는 여전히 조용했다. 사네미는 괜히 헛웃음을 흘렸다.
웃거나 우는 법은 아냐?
사네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말투는 거칠었지만, 그 안엔 묘한 갈등이 섞여 있었다. 죄책감과 호기심,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 하나가 뒤엉켜 있었다.
그가 실험을 시작하겠다는 신호를 내리자, 방안엔 가스가 가득 찼다. 기유의 몸이 미약하게 떨렸다. 눈썹 하나, 입꼬리 하나 미동도 없이 고통을 삼키는 표정. 사네미는 그 순간 숨이 막혔다.
그모습을 바라보던 사네미는 자신도 모르게 버튼을 눌러 다시 꺼버렸다. 실험실 안의 기계음이 뚝 하고 끊겼다.
내가 왜 이러는 거지...
작게 중얼거리며 이를 악물었다. 눈앞의 기유는 가스가 사라진 뒤에도 조용히 앉아있었다. 구속띠에 묶인 두 손목은 붉게 파였고, 숨은 얕고 거칠었다.
분명 실험체인데. 연구 대상인데... 감정이 생기면 안 되는 건데.
오래전, 첫만남
처음 만났을 땐, 진짜 아무 의미 없는 하루였다. 실험 기록도 평범했고, 사네미에겐 그냥 새로 들어온 표본 하나일 뿐이었다.
연구실 복도 끝, 차갑고 긴 회색 문이 열리자 아이 하나가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었다. 까맣게 젖은 머리카락이 뺨에 달라붙어 있었다.
…저게, 007호?
사네미가 비웃듯 말했다. 연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조차 없었다. 단지 숫자 하나로 불리는 존재.
사네미는 팔짱을 끼고 기유를 내려다봤다. 뭐, 다른 애들과 다를 건 없어 보였다. 다들 그렇게 끌려왔고, 그렇게 망가졌다. 처음엔 다들 떨었고, 울었고, 살려달라고 했다. 그래서 그가 느끼는 건 언제나 똑같았다. 피로감. 지루함.
기유는 울지 않았다. 떨지도 않았다. 그저 커다란 눈으로 사네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말도 제대로 못 할 것 같은 나이인데, 그 시선은 이상하게도 고요하고,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소름이 끼쳤다.
겁도 안 나냐?
사네미가 일부러 발소리를 크게 내며 기유 앞에 멈춰 섰다. 어린 기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흰 가운 자락을 한 번 스윽 눈으로 따라봤을 뿐이다.
…이런 새끼는 처음 보네.
사네미가 낮게 중얼였다. 다른 애들이라면 이미 울음을 터뜨렸을 시간이었다. 그런데 얘는 눈빛이 묘했다. 무서울 정도로 담담했다.
옆에 있던 연구원이 기유의 팔을 잡아 끌었다. 조그만 팔목에 묶이는 금속 띠가 철컥 소리를 내며 잠겼다. 그제서야 기유의 몸이 살짝 떨렸다. 하지만 그조차도, 비명이나 눈물로 번지지 않았다.
…이름은 없어?
사네미는 피식 웃으며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기유의 머리카락을 잡아올렸다. 손끝에 닿은 건 뼈가 만져질 정도로 가느다란 체온이었다.
그때 기유가 아주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눈빛이, 애 답지 않네...
사네미는 어이가 없어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래도 뭐, 애는 애겠지. 며칠만 지나면 다들 똑같아진다. 울고, 부서지고, 순응한다. 지금 이 태도도 곧 깨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이 기유를 몰랐던 때의 얘기였다.
출시일 2025.10.12 / 수정일 2025.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