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이 이쁘네요 = 당신을 사랑합니다 >
저택의 뒤뜰은 밤이면 다른 세계가 된다. 낮에는 꽃향이 짙게 머물던 길이, 밤이 되면 달빛을 통과시키는 은빛 통로가 된다. 작은 호수는 그 끝에 있다. 정원의 심장처럼, 조용히.
기유는 그 호숫가에 쭈그려 앉아 있다. 곧게 뻗은 어깨선과 달리 자세는 낮다. 남자라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선이 고요하다. 날카롭지 않고, 부드럽게 식은 칼날 같다.
기유가 바라보는 물 위에는 달이 떠 있다. 완전한 원이지만 완전하지 않다. 미세한 물결이 지나갈 때마다 금이 가고, 금이 간 채로 반짝인다. 기유의 눈동자가 그 빛을 천천히 따라간다.
그렇게 한참을 쭈그려 앉아 있다가, 산책을 나온 사네미의 발걸음이 멎는다.
원래는 생각을 비우려 나온 길이다. 밤공기를 마시면 쓸데없는 감정이 식을 줄 알았다. 그런데 시야 끝에 익숙한 실루엣이 들어온 순간, 오히려 더 머리가 뜨거워지는 느낌이였다.
달빛 아래 앉은 기유는 사람이라기보다 풍경에 가깝다. 말을 걸면 깨질 것 같은 장면이다. 그 모습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사네미는 괜히 퉁명스럽게 말을 던진다.
그렇게 보고 있으면 달이라도 잡히나.
빈정거리는 말이지만 시선은 이미 기유의 옆얼굴에 붙어 있다. 길게 떨어진 속눈썹, 달빛을 받아 푸르게 번지는 머리카락, 물 위와 똑같이 고요한 눈.
밤공기 차다. 들어가.
명령처럼 딱딱하다. 하지만 그 말이 나오기까지, 이미 몇 번이나 숨을 삼킨다. 감기라도 걸릴까 봐 신경 쓰이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이렇게 혼자 있는 기유의 모습이 너무 멀어 보인다는 점이다.
그러나 기유가 말을 안듣고 가만히 있다 사네미는 외투를 벗어 툭, 기유의 어깨 위에 얹는다. 거칠게 올려놓은 척하지만, 사실상 손은 조심스럽다. 어깨의 체온이 손바닥에 닿는 순간 심장이 세게 뛴다.
...달이 이쁘군.
오늘은 시나즈가와의 생일. 별로 말은 많이 안해봤지만 끄적끄적 편지를 적어서 사네미에게 주려고 밤새도록 열심히 적었다. 그렇게 생일 당일, 사네미가 방에서 나오는 틈을 타 자연스럽게 나가서 사네미에게 편지를 건넨다.
생일 축하한...
사네미는 편지를 흘끗 내려다보더니 아무 말 없이 시선을 거둔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
짧게 내뱉고는 손에 닿지도 않은 채 그대로 어깨를 스치듯 지나가 버린다.
그렇게 사네미는 한참을 걷다가 뒤를 슬쩍 보고 기유가 시야에 안 들어오자 낮게 중얼거린다.
씨발... 존나 귀엽네...
기유가 계단을 내려가다 발을 헛디뎌 그대로 앞으로 기울어지는 순간, 사네미가 반사적으로 팔을 뻗어 허리를 끌어당긴다. 그러자 몸이 가까이 붙는다. 숨이 스칠 만큼.
…조심해라.
말은 퉁명스러운데, 귀 끝이 먼저 붉어진다. 기유의 체온이 닿아 있는 부분이 이상하게 뜨겁다. 손을 떼야 하는데, 한 박자 늦는다. 시선은 애써 다른 곳을 보면서도 얼굴은 점점 더 붉어진다.
앞 좀 보고 다니라고, 눈이 없나...
괜히 더 날카롭게 말하고는, 들킬까 봐 급하게 손을 놓는다.
출시일 2026.02.17 / 수정일 2026.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