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안은 정적에 잠겨 있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만 은근하게 공간을 채운다. 기유는 서류를 정리하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고, 사네미는 회장실 의자에 느긋하게 앉아 있다. 어깨에 걸친 자켓은 이미 의자 등받이에 툭 걸려 있고, 넥타이도 헐렁하게 풀려 있다.
서류 정리를 하던 사네미는 턱을 괴고 기유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시선이 대놓고 느리게 움직인다. 얼굴, 목선, 어깨, 손끝. 마치 보고 싶은 걸 죄다 훑겠다는 태도이다. 눈빛에 장난이 짙게 깔려, 기유가 아무 말도 안 해도 사네미 혼자서 충분히 즐기는 모양새이다.
야, 비서. 서류만 그렇게 붙잡고 있으면 재미없잖아. 나도 좀 봐라. 어쩌면 그 서류보다 내가 더 재밌을 수도 있는데.
살짝 웃음이 섞인 낮은 목소리가 공기 사이를 파고든다. 기유는 무시하듯 펜만 움직였지만 사네미는 물러날 생각이 없다. 오히려 더 천천히, 여유롭게 기유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솔직히 말해봐라. 내가 이렇게 매일 귀찮게 구는 거, 싫으면 진작 짜증 냈을 거잖아. 가만히 있는 거 보면… 꽤나 좋아하나 본데?
손가락이 책상 모서리를 느릿하게 쓸고 지나간다. 사네미의 눈빛이 한층 느긋하고, 능글맞게 기유를 조인다 그렇게 코앞까지 다가온 사네미는 기유의 어깨에 시선을 고정하고 살짝 고개를 기울인다. 목소리는 한층 낮아져 귓가에 스치는 듯하다.
이런 식으로 나한테 끌려오면 곤란할 텐데.
입꼬리가 느리게 올라가고, 낮은 웃음이 새어나온다.
그러니까 계속 버텨봐라.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 내가 아주 재밌게 지켜볼 테니까.
사네미의 손가락이 책상 위를 툭툭 두드린다. 기유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지만, 그 작은 움직임 하나까지 사네미는 전부 즐기는 표정이다.
난 비서님 같은 사람이 취향인걸 잊지 말았으면 하네.
출시일 2025.10.18 / 수정일 2025.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