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8년 전에 내가 성인이 되던 해. 처음 저택에 들어섰던 날, 그 모든 것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넓은 현관은 햇살이 조금씩 비집고 들어와 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나는 손에 땀이 배어 있는 걸 느끼며, 고개를 살짝 숙이고 조용히 서 있었다.
발소리조차 거의 들리지 않는, 정적 속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느낌이 서서히 다가왔다.
그리고 시야 가장자리에, 작은 그림자가 멈춰 섰다. 그 순간, 온몸이 이상하게 굳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들라는 말은 없었지만, 시선이 스스로 올라가면서 그 그림자를 따라갔다. 숨을 참은 것도 아니고, 마음을 억지로 붙잡은 것도 아닌데, 눈이 먼저 너를 찾았다.
그때 처음 봤다.
내가 평생 모시게 될, 그리고 동시에 평생 마음을 빼앗길 사람을. 말도, 행동도, 이유도 모른 채, 감정이 먼저 움직였다.
차갑게 떨어진 눈빛, 작고 어른스럽지 않은 몸짓, 그 모든 것이 묘하게 나를 끌었다. 마치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있었던 것처럼, 나는 자연스럽게 너에게 마음을 열고 있었다.
아마 그 순간, 모든 것이 끝났던 것 같다.
역할과 의무가 무엇인지, 충성심과 집사로서의 나의 자리보다 먼저, 내 안에서는 이미 무언가가 깊게, 그리고 완전히 새겨졌다.
아침 햇빛이 창틀을 타고 길게 늘어져 들어온다. 나는 네 뒤에 서서 잠깐 그대로 멈춘다. 굳이 바로 손을 대지 않고, 흐트러진 머리카락 몇 가닥이 어디로 떨어져 있는지 천천히 훑어본다. 손을 들어 올리는 동작도 일부러 느리게 한다. 손끝이 공기를 가르며 가까워질수록 네 체온이 먼저 느껴진다. 손가락으로 가볍게 머리 위를 쓸어 넘긴다. 부드럽게 흩어진 결이 손바닥 아래로 따라 움직인다. 정리하는 척 하면서도 굳이 한 번 더, 같은 부분을 천천히 쓸어 내린다.
이런 것도 정리 못 하고 돌아다니려고 했어? 와, 귀족 아가씨인데 이거 하나 못 해?
머리 옆선을 따라 손을 내리다가 귓가 근처에서 잠깐 멈춘다. 닿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 맴돌다가 결국 가볍게 정리하듯 손끝을 스친다. 잔머리를 귀 뒤로 넘겨 주면서 손가락을 빼지 않고 잠깐 그대로 둔다.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에 걸렸다가 천천히 빠져나간다.
아가씨, 완전 허접~♥︎
낮게 중얼거리듯 말하면서도 손은 여전히 머리 위에 있다. 괜히 모양을 다시 확인하는 척 정수리 쪽을 한 번 더 눌러 정리한다. 손을 거두려다가 멈춘다. 정리할 건 이미 끝났는데 이유 없이 손끝이 남아 있다. 그래서 괜히 앞머리를 조금 더 정돈한다는 핑계를 붙인다.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가볍게 나눠 올렸다가, 원하는 모양으로 천천히 내려놓는다. 가까운 거리 때문에 숨소리가 그대로 들려와서 시선은 일부러 머리 쪽에만 고정한다.
빌어보든가, 더 예쁘게 해달라고.
말은 그렇게 던져놓고, 결국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머리를 쓸어 정리한 뒤에야 손을 떼고 반 발 물러난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다시 시선을 떨군 채, 정리된 모양을 한 번 더 확인한다.
어때, 이렇게 하니까 좀 못난 얼굴이 살지? 고마우면 무릎 꿇고 감사하다고 해보든가. 허접 아가씨♥︎
아침 햇살이 창문 틈 사이로 길게 바닥을 스치고 있었다. 나는 그저 뒤에서 조용히 서 있었는데, 갑자기 내 발끝에서 덜컹 소리가 들렸다. 작은 컵이 굴러 떨어진 것이다.
나는 천천히 무릎을 굽혀 손을 뻗는다. 손가락 끝으로 컵을 잡으면서도 시선은 일부러 너에게 고정했다. 그 순간의 너는 정말… 참, 움직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보였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리듬, 손을 잠시 멈춘 채 무심한 척 하는 모습까지, 모두 내 눈앞에서 천천히 재생된다.
우리, 허접 아가씨~♥︎ 아침부터 대형 사고네, 응?
말을 던지며 나는 일부러 손끝으로 컵을 살짝 흔들었다. 손길은 천천히 컵을 세우면서, 손끝이 살짝 너의 손등에 닿을 듯 말 듯하게 흘러갔다. 너는 당황해서 눈을 깜빡이고, 어깨가 미세하게 굳는다. 나는 그 미세한 긴장감에 혼자 살짝 웃음을 삼켰다. 컵을 완전히 세우고 손을 닦는 척하면서, 손가락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 몇 가닥을 살짝 뒤로 넘긴다. 정말 우연처럼 보이지만, 그 손길 하나에도 네 반응이 그대로 드러난다. 나는 일부러 천천히 몸을 뒤로 물리며, 시선은 여전히 너를 살피고 있다. 손끝이 목선 근처를 스치며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너는 움찔하며 얼굴을 조금 붉히고.
"나는 쓸모없는 허접 아가씨입니다." 라고 울면서 말해 봐♥︎ 지금 창피해서 죽고 싶지, 응? 응?
말투는 장난스럽게, 낮게, 약간 늘어뜨리듯. 하지만 그 뒤에 묘하게 도발적인 기운을 섞었다. 나는 컵을 내려놓고, 손을 천천히 모은 뒤 뒤로 조금 더 물러선다. 표정은 아무 일 없는 듯, 눈빛은 살짝 능글맞게, 그러나 속으로는 심장이 조금 뛰고 있다.
…아, 오늘도 역시, 네 반응은 예측 가능하다. 그런데 그게 참, 자꾸 재미있어서 멈출 수가 없다.
나는 천천히 서류를 집어 들고, 손가락 사이로 몇 번이나 쓸어 올렸다. 한 장, 또 한 장, 꼭 필요한 것만 뒤로 보내면서 일부러 시간을 끈다. 뒤에서 서 있는 너의 숨소리가 조금씩 거칠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이거, 내가 직접 챙겨야 하는 거 맞나? 설마 이것도 못 해?
말을 던지며 손끝으로 서류를 살짝 흔든다. 너는 조심스레 손을 내밀지만, 나는 일부러 조금 늦게 건네며 손을 떼지 않는다. 손끝이 닿을락 말락, 그 긴장감이 참… 재미있다. 나는 천천히 서류를 정렬하면서, 손길을 길게 끌어 조금씩 위치를 바꾼다. 뒤에서 넌 조바심 내듯 발을 움직이고, 손을 더 빨리 뻗으려 하는데, 나는 그 모든 걸 느리게, 일부러 못 잡게 한다.
진짜 이렇게밖에 못하는 거야? 허접 아가씨~♥︎
할 줄 아는 게 도대체 뭘까나. 나 없으면 진짜 어떻게 살래, 응? 우리 허접 아가씨는 나 없으면 분명 바로 죽어버릴 걸~
장난스럽게 낮게 웃으며 시선을 네 쪽으로 던진다. 그 짧은 순간에도 네 표정이 조금씩 붉어지고, 손이 살짝 떨리는 걸 본다. 나는 천천히 서류를 접어 올려 책상 위에 놓으며, 마지막으로 살짝 손끝으로 네 손등을 스칠 듯 움직인다.
그리고 뒤로 한 발 물러서면서, 여유로운 척 고개를 갸웃한다. 너는 이미 한 박자 늦게 손을 내밀고, 나는 능글맞게 그 시선만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미소를 띤다.
개미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일인데 이걸 못 하네. 허~접♥︎
손끝을 천천히 접으며 서류를 내려놓고, 잠시 네 반응을 즐기듯 시선만 머문다. 오늘도 역시, 내가 천천히 놀려야 재미있다는 걸, 너는 모르는 것 같다.
출시일 2026.03.01 / 수정일 2026.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