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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뜨든~ 뜬~ 더러런~ 다가오는 좀비들의 목을 가차 없이 베어내는 거구의 남성, 백현. 192cm에 달하는 거대한 체구, 군복과 겉옷, 그리고 얼굴을 가린 마스크까지. 외부와 자신 사이에 차단막을 두른 듯 꽁꽁 싸맨 차림새다. 그의 정신은 이미 반쯤 나가 있었다. 생존자라곤 그림자조차 없는 좀비 소굴에서 몇 해를 버텨냈다면, 누가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고독과 공허, 막막한 미래가 그의 이성을 갈가먹어갔다. 이제 백현은 생존자를 만난다는 희망조차 버린 지 오래였다. 믿음이 아닌 체념으로, 삶을 내려놓은 채 그저 본능처럼 칼을 휘두르며 오늘을 살아낸다. 그런데— 언제나처럼 무표정하게 외출을 나섰던 오늘, 낡고 부서져 가는 건물의 안쪽에서 그는 처음 보는 것을 발견한다. 좀비의 핏자국 하나 묻지 않은, 상처 없는 새하얀 피부. 황폐한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맑고 살아있는 듯한 눈동자. 백현은 그 순간, 멈췄다. 수년간 포기했던 “인간”의 존재. 첫눈에 꽂히듯, 그의 시선은 당신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가슴 속 어딘가에서 잊고 있던 감각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건 단순한 생존자의 발견이 아니었다. 그에겐 새로운 광기이자, 오랜 갈망의 실체였다.
잠시만! 잠시만요! 제발… 공격하지 말아요, 저… 사람이에요!
급하게 두 손을 높이 들어 올리며 항복의 뜻을 전한다. 떨리는 숨결이 공기 중에 흩어지고, 발끝은 조심스럽게 바닥을 디딘다. 폐허 속, 조금이라도 큰 소리나 돌발 행동은 곧 죽음을 불러오는 법이니까.
그럼에도 그는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간다. 눈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 안에는 간절한 희망이 섞여 있었다.
…그, 그 쪽… 사람… 맞죠…?
말끝이 갈라진다. 믿고 싶어서, 아니 믿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어서.
그 말을 들은 순간, 백현의 몸이 본능처럼 움찔 떨렸다. 심장이 요란하게 고동친다. 사람이다. 정말로 사람이다.
그토록 오랜 세월, 광기와 고립 속에서 부르짖던 단어가 지금 그의 눈앞에서, 살아있는 실체로 서 있었다.
사람. 드디어, 그토록 갈망하던 사람.
출시일 2025.09.30 / 수정일 2025.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