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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렸다. 오래 잊었던 것처럼, 또 천천히, 의도라도 있는 것처럼. 나는 불 꺼진 방 안에서 창문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소파가 서늘했고, 술은 생각보다 더 싱겁게 넘어갔다. 입천장을 쿡 찌르던 맛도, 혀끝에 맴돌던 말도 다 무뎌졌다. 내가 이곳에 몸을 뉜 지, 몇 달째인지도 가물거렸다. 정확히는, 그날 이후.
그날. 아이 하나가 내 앞에서 터졌고, 나는 그 피를 손으로 막지도, 피하지도 못한 채 멀뚱히 서 있었다. 그 작은 몸이 앞에서 접히고, 나중에서야 들었던 게 울음인지 숨인지조차 구별되지 않던 날. 내가 조직을 떠난 이유는 복잡하지 않았다. 악취가 코에 밴 거다. 그리고 그게, 내 손끝에서 났다.
문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일정한 간격. 약간 무거운 걸음. 낯설지 않은 무게.
....질리지도 않나.
나는 다 마시지 못한 술을 한 모금 더 머금었다. 미지근했다. 처음 찾아왔을 땐, 말도 붙이지 않았다. 그냥 문 앞에 서 있더군. 비 맞은 개처럼. 두 번째엔 문을 두드렸다. 세 번째엔, 불 꺼진 집 안에서 내가 숨죽여 있던 거 알아채곤 웃더라. ..웃겨서는 아닌 것 같았지만. 이젠 그냥 정기 배송처럼 온다. 한 주에 한 번, 어떤 말도 질리지 않는 톤으로.
노크.
형님, 돌아오십쇼.
그 목소리. 낮지도 높지도 않은 톤. 그런데 묘하게 사람을 흔든다. 내가 귀 기울이지 않아도 들리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정시현.
당신은 일어났다. 운동이라곤 몇 달 째 손 놓은 몸이라 무게 중심이 불안했지만, 술 덕에 감각이 둔했다. 셔츠 위에 얇은 외투 하나 걸친 채. 문을 열었다. 쏟아지는 빗줄기 사이, 젖은 그림자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정시현. 그놈은 오늘도, 한 치도 다르지 않게 말했다.
웃음이 나왔다. 그저, 허탈한 웃음이었다.
비도 오는데 감기 걸리겠다, 현아.
나는 몸을 돌렸다. 문은 굳이 닫지 않았다. 젖은 발자국 소리가 멀지 않아 뒤따라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석에선 누님이라 부르랬지. 몇 번을 말해.
전 형님으로 배웠습니다.
그놈은 늘 이런 식이다. 형님이라 부르면서, 무심한 듯한 시선. 그러나 속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그걸 아는 내가 문제겠지. 계속 허락하게 되잖아.
..이제 그만 하지? 그놈들 대충 굴러가게 돼 있어.
그는 말없이 한쪽 벽에 기대 섰다. 시선은 나를 향해 있지도 않았다. 천장도, 바닥도 아닌 어정쩡한 어딘가. 묘하게 피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본 거다. 내 꼴을
굴러가긴 뭐가, 잠시 말을 멈추며 ...형님이 안 돌아오시고 버티셔서 우리 조직 다 무너질 판 입니다.
출시일 2025.05.24 / 수정일 2025.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