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정도 결국 정이라는 명제 아래에서, 내가 끝내 도출해 낸 결론은 단 하나였다. 미운정은 고운정보다 훨씬 더 오래 남고, 몇 배는 더 질기다는 것.
애초에 우리는 맞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변호사다. 선을 지키는 직업. 누군가는 감정으로 달려들고, 누군가는 정의를 외치지만 결국 내 일은 정해진 선 안에서 사람과 사건을 분리해 판단하는 것 이였다.
반대로 내 남편은 기자다. 선을 넘어야 하는 직업을 가졌다. 남들이 닫아 둔 문 앞에서 멈추는 사람이 아니라, 왜 닫혀 있는지 묻고 끝내 들여다보는 사람.
우리는 시작부터 달랐다. 한쪽은 지키고, 한쪽은 넘는다. 한쪽은 닫고, 한쪽은 연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충돌은 쉽게 깨지지 않았다. 오히려 반복될수록 더 단단해졌다.
그게 문제였다.
첫 만남도 당연히 특별한 감정 때문은 아니었다. 운명이라든가, 첫눈에 반했다든가. 그런 로망적인 말로 포장하기엔 지나치게 현실적이었다.
딱딱했고, 까맸고, 눈부셨던. 카메라 렌즈. 한 치의 양보 없이 시야를 밀고 들어오는 렌즈의 감각.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꿰뚫어 보려 드는 시선.
그게 오명재였다.
오명재는 이상할 만큼 단순한 인간이었다. 1234보다 단순했고, 1톤 트럭 타이어보다 질겼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돌아오는 건 늘 같았다.
“질문 하나만 더요.”
그리고 내 대답도 늘 같았다.
“지금은 안 됩니다.”
기계처럼. 거절이 반복되면 감정도 닳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인간은 포기를 몰랐다.
좋아하는 건 뭔지. 퇴근은 몇 시인지. 왜 항상 같은 색 정장을 입는지. 정말 끝없이 물었고, 나는 끝없이 닫았다.
늘 그런 반복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했다. 이상할 만큼 그 반복이 불쾌하지 않았다.
아마 거기서부터였을 것이다. 그 망할 미운정이 들기 시작한 건.
그리고 나는 결국 그 미운정에 붙잡혔다. 처음으로 변호사가 아닌 여자로서 빈틈을 내어 줬다. 감정을 갖는 데 서툴렀고, 다루는 건 더 서툴렀던. 그리고 그 남자와. 인생 최악의 실수를 했다.
결혼.
지금도 주변인들은 묻는다. 대체 둘이 어떻게 결혼했냐고. 나도 궁금하다. 물론 정상적인 과정은 아니었다. 남들처럼 애정이 넘치는 연애도 아니었고, 서로 죽고 못 사는 다정한 눈빛도 없었다.
굳이 설명하자면, 어느 순간부터는 단순해졌을 뿐이다. 그는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늘 곁에 있었고, 나는 그가 계속 묻는 것을 묵인했다. 그렇게 결국, 정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서로에게 붙들려 버렸다.
결혼 2년 차. 현재 우리 집 거실 한가운데엔 교훈 하나가 걸려 있다.
〈웬수도 정 들면 사고 난다〉
처음 봤을 땐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꽤 정확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어김없이. 남의 사생활과 비밀이라면 눈빛부터 달라지는 내 남편, 아니… 내 웬수가. 내가 출근한 줄 알고 아주 뻔뻔한 얼굴로 내 서재를 뒤지고 있다가 딱 걸렸다.
서랍은 반쯤 열려 있고, 손에는 내 노트 한 권. 들킨 사람치고는 놀라는 기색도 없이 오히려 여유롭게 웃어 보이는 저 뻔뻔한 얼굴까지.
정말… 오늘 하루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아내가 현관문을 닫고 나간 지 정확히 7분. 나는 그 시간을 늘 재는 편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이 완전히 사라진 직후의 공간은, 생각보다 많은 걸 드러내니까.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재. 이 집에서 유일하게 ‘접근 제한’이 걸려 있는 공간.
그리고 그게 오히려 문제였다. 기자에게 제한은 경고가 아니라 유도다. 닫힌 문은 정보의 부재가 아니라 정보의 밀도다. 문고리를 잡기 전, 속으로 한 번 되뇌었다. 청소다. 단순한 정리 정돈. 남편 된 도리. 결코 뒤지는 게 아니다.
물론 양심이 찔려서라기보단, 혹시 들켰을 때 내세울 변명을 미리 준비해 두는 쪽에 가까웠다. 문을 열자 익숙한 종이 냄새가 스쳤다. 아니, 특종의 냄새였다. 문 밖에서 ‘청소’를 외치던 남편은 이제 없다. 지금부터는 기자다. 변호사의 서재에 당당히 먹이를 찾아 들어온 간 큰 기자.
자연스럽게 책상 서랍부터 열었다. 서류. 파일. 판결문 사본. 날짜별 분류. 완벽하다. 역시 내 아내답다. 아니, 변호사답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이상했다. 사람은 보통 어딘가엔 흔적을 남긴다. 그런데 이 사람은 흔적조차 정리해서 숨긴다.
그때였다. 맨 안쪽, 왼편 구석. 처음 보는 검은색 노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단번에 직감했다. 이거다. 오늘따라 괜히 서랍을 열고 싶더라니. 조심스럽게 펼치자 익숙한 필체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속으로 조용히 환호하며 다음 장을 넘기려던 순간.
거기서 뭐 하십니까. 오명재 기자님.
등골이 서늘해진다는 말은 이런 때 쓰는 거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분명 조금 전까지 나갔던 아내가 문가에 떡하니 서 있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검은 정장인데, 오늘따라 왜 저승사자 복장처럼 보이는지 모르겠다.
들켰다. 완전범죄를 꿈꿨는데 시작도 못 하고 검거당했다. 아니, 잠깐. 왜 다시 왔지? 뭐 두고 갔나? …저 완벽주의자가? 설마. 에이.. 설마 이 장면까지 예상하고 일부러 돌아온 건 아니겠지. 그 순간 손에 들린 노트가 갑자기 증거물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여기서 기 죽으면 끝이다. 생존이 먼저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노트를 제자리에 밀어 넣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뻔뻔한 미소를 얼굴에 얹었다. 아내의 시선이 내 손끝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따라온다. 잠시 뜸을 들인 뒤, 태연하게 웃었다.
뭐 하긴요? 보면 몰라요? 우리 여보 서재 청소 중이지.
…아까 나가더니. 왜? 뭐 두고 갔어?
출시일 2026.05.27 / 수정일 2026.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