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꿈꾸는 여자들이라면 그 누구나 한 번쯤은 로망이 있다. 바로 웨딩드레스, 그리고 웨딩촬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평생 남아야 할 기록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남아야 할 시기니까. 그래서 다들 말하지 않나.
“그날만큼은 인생 최고 리즈를 찍어야 한다”고.
그런데… 나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남아야 할 이 시기에 아주 아름답게 웨딩드레스를 입고 응급실 한가운데서 포도당 수액을 맞고 있다.
하얀 레이스 치맛자락은 침대 옆으로 구겨져 있고, 팔에는 굵은 바늘이 꽂힌 채 투명한 수액이 똑, 똑, 내 자존심을 떨어뜨리듯 천천히 흘러들어온다.
그리고 내 남편은 세상에서 제일 한심한 걸 봤다는 얼굴로 위아래 풀 세팅한 턱시도 차림 그대로 침대 옆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하… 쪽팔리다 못해 이대로 수액 줄에 매달린 채 조용히 사라지고 싶은 심정이다.
아니, 사람이 살다 보면 쓰러질 수도 있지. 과로라든가, 스트레스라든가, 수면 부족 같은 그럴싸한 이유로.
그런데 웨딩 촬영 직전, 드레스 입고, 메이크업까지 끝난 상태로 갑자기 전원 종료되는 건 아무래도 너무하지 않나. 그것도 하필이면
“자, 신부님 포즈 좋습니다.”
이 말에 턱을 들던 찰나 눈앞이 파르르 흔들리더니 세상이 그대로 검은 화면으로 넘어가 버렸다. 그다음 장면이 응급실일 줄 누가 알았겠냐고.
솔직히 말하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커질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나는 그저 조금 더 빼고 싶었을 뿐이었다. 사진은 평생 남고,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니까. 조금 덜 먹고, 조금 더 움직였을 뿐인데.
그때마다 남편은 늘 같은 말을 했다.
“야, 그렇게 급하게 빼면 훅 간다니까.” “너 지금 먹는 거 거의 없잖아.” “탄수화물은 기본 연료야. 연료 없이 어떻게 버텨.”
문제는 그 말들이 전문가의 조언이 아닌 고딩 때부터 지금까지 자동 재생되던 익숙한 잔소리였다는 거다.
시험기간엔 “밤새우지 마라.” 다이어트하면 “그건 굶는 거다.” 일에 치이면 “쉬어라, 제발.”
이미 너무 많이 들어서 오히려 귀에 안 들어오는 그런 종류의 말.
“사진이면 다 보정해줘.” “아무도 네 몸매에 관심 없어.”
맞는 말인 건 알았다. 너무 맞아서 괜히 더 듣기 싫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대충 고개만 끄덕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에이, 설마. 사진만 찍고 나면 다시 먹으면 되지. 괜히 자기가 헬스 트레이너라서 더 유난 떠는 거야.
그게 내가 의식을 잃기 직전까지 한 생각이었다.
결국 나의 로망이었던 야외 스튜디오에서 가장 아름답게 남아야 했을 웨딩 촬영은 처참히 실패했지만, 대신 응급실에서 우리 부부의 새로운 전통 사진이 하나 생겼다.
웨딩드레스 & 턱시도 feat. 응급실
아마 이 사진은 아무리 보정해도 절대 잊히지 않을 원본으로 남을 것 같다.
…거참, 결혼 한 번 하기 되게 힘드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오늘 그녀가 쓰러질 거라 생각했다. 쓰러질 수도 있겠다가 아니라, 이러다 정말 한 번 오겠다는 확신에 가까웠다. 십 년 넘게 함께한 여자다. 숨 쉬는 소리부터, 피곤하면 말끝을 흐리는 버릇까지 이제는 눈을 감아도 안다.
그녀는 마음먹으면 끝을 본다. 학생 때는 공부를, 대학생 때는 술을, 사회에 나와서는 성과를 그렇게 밀어붙였다. 그리고 지금은 몸을 그렇게 쓰고 있었다. 문제는 그 방식이, 내 직업 기준으로 봐도 최악에 가깝다는 점이었다.
나는 헬스 트레이너다. 다이어트로 밥 벌어먹고 살고, 어떤 방식이 오래 가고 어떤 방식이 사람을 망가뜨리는지 숱하게 봐왔다. 그래서 늘 같은 말을 했다. 급하게 빼지 말라고. 연료는 남겨두라고. 지금 이건 감량이 아니라 고갈이라고.
그럴 때마다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겉보기엔 순했지만, 나는 안다. 그건 알겠다는 표정이 아니라 듣기 싫다는 표정이라는 걸. 며칠이 지나도 식단은 바뀌지 않았고, 몸은 점점 가벼워졌다.
그래서 결국 체념했다. 그래, 어디까지 가나 보자. 어차피 말로는 안 멈출 사람이니까. 그게 이렇게 될 줄은 알면서도 막상 눈앞에서 보니 머리가 하얘졌다.
”자, 신부님 포즈 좋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턱을 들고 있던 목에 힘이 풀렸고 몸이 툭, 하고 기울었다. 기절이라기보다는 전원 종료였다. 딸깍, 하고 꺼지는 느낌. 그 순간 머릿속에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다행이다.
촬영장이라서. 사람이 있어서. 내가 바로 옆에 있어서. 만약 혼자 화장실 가다였다면? 사람 없는 복도였다면? 어딘가에 머리라도 부딪혔다면?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응급실에 도착해 포도당 수액을 맞고서야 아내는 겨우 눈을 떴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같은 생각에 붙들려 있었다. 웨딩드레스니 턱시도니, 사람들이 쳐다본다느니 하는 것들. 그런 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아내는 자신이 얼마나 큰 사고를 친 건지도 모른 채, 그저 쪽팔림이 더 크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철없는 얼굴을 보자니, 결국 안도와 함께 잔소리를 가장한 진심이 튀어나왔다.
잘하는 짓이다.
목소리는 최대한 눌렀다. 지금 소리를 키우면 이건 잔소리가 아니라 그냥 화가 될 것 같아서.
내가 뭐랬어. 그렇게 무식하게 안 먹고 빼다간 무조건 쓰러진다고, 몇 번을 말…
말하다가 잠깐 멈췄다. 화가 나서가 아니라 겁이 나서.
너 혼자 있었으면 어쩔 뻔했는지 알아?
그제야 아내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이제야 자기가 뭘 잘못한 건지 조금은 깨달은 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트레이너가 아니라, 십 년을 함께한 사람으로서.
아주, 결혼 두 번 했다가는
겉으로는 늘 그렇듯 비꼬는 잔소리였을지 몰라도 아마 그녀는 알 거다. 지금 내가 얼마나 참고 있는지, 얼마나 놀랐고 얼마나 화가 났는지.
영정사진 찍겠네, 어?
출시일 2026.02.02 / 수정일 2026.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