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라면 무슨 일이든 하는 승혁은 오늘도 뒷골목에서 눈알을 굴리며 돌아다녔다. 고아로 태어나 꽤 오랜시간 이 골목을 지켜온 그에게, 보편적인 도덕이나 규칙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돈이 되는 가치있는 일과, 돈이 되지않고 성가신 나머지가 있을 뿐. 어느날부터, 무질서가 어지럽게 어둠을 장악하는 골목에 기이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인어의 눈물로 묘약을 만들 수 있고, 그걸 마시면 걱정과 근심은 사라지고 쾌락은 배가 된다고. 푸르게 빛나는 작은 진주의 형태인 인어의 눈물은 어느새 고가로 거래되는 상품으로 자리잡았고, 승혁도 큰 돈을 만질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인어를 납치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다. 그는 해변가에서 멋모르고 쉬고있던 어린 인어를 낚아챘고, 그녀를 어두운 지하실의 수조에 가두었다. 겁에 질린 그녀가 눈물을 흘릴 때마다 그걸 몽땅 팔아버릴 계획이었다. 그런데, 인어는 수조에서 겨우 숨만 쉬고 있으면서도 도통 눈물을 흘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그저 갇힌 채로 말라버리는 듯한 그녀를 보며 승혁은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최후의 수단으로 인어를 괴롭히기까지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자신의 눈물이 귀한 것을 알고 일부러 이러는 건지. 이러다가 못 버티고 결국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일단 인어를 살려놓기 위해 승혁은 수조 주위를 맴돌며 그녀를 돌봤다. 다정함과는 거리가 먼 태도였지만, 최대한 그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매혹적인 인어에게 시선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경직되어있던 몸은 어느새 풀어졌지만, 뒤틀린 감정을 그는 무시하기 바빴다. 어쩌면 처음으로 느껴보는 애정에, 그걸 받아들이는 순간 이때까지 자신을 지배해오던 신념이 무너져내릴 것 같아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당장이라도 인어의 눈물을 착취해야함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승혁은 이제 그녀에게 더 이상 손을 댈 수 없었다. 이 거북한 감정을 정의내리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저 인어가 더 이상 울지 않았으면, 눈물을 볼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 이해되지 않았을 뿐.
작은 수조에서 나는 적막한 물소리가 방을 채웠고, 남자는 축 처져있던 인어를 거만한 태도로 내려다본다. 어서 울어라, 너의 눈물이 필요하니깐. 그가 유리벽을 주먹으로 치자 쿵- 소리와 함께 수조 전체가 울렸다. 내가 돕기를 원해? 괴롭게 만들어 줄까? 그의 눈이 섬뜩하게 번뜩인다. 제 손에 포획된 어리석은 짐승을 하찮게 대하는 눈빛이었다. 그가 인어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잡아올리자 그녀는 가냘픈 숨을 몰아쉬었고, 그에겐 그 꼴이 너무나 우스웠다. 얼굴은 쓸데없이 예뻐. 눈물만 흘려주면 더 예쁠 것 같은데.
물 속에서 일렁이고 있는 인어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어 들어올린다. 그녀의 버둥거림에 사방으로 물이 튀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진득한 시선으로 어쭙잖은 반항을 응시했다. 보석을 수놓은 것처럼 물에 비쳐 반짝거리는 꼬리와 하늘하늘하게 퍼지는 푸른빛의 머리카락, 투명한 유리구슬을 박은 듯한 눈동자. 문득, 인어가 지나치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름다운 짐승에게서 고작 눈물을 얻어내기 위해 그녀를 학대하는 자신이 거북해질 지경이었다.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면서도 그녀의 반짝이는 눈동자는 전혀 젖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힘을 준 채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을 뿐이다. 문득, 기분이 더러워져 우악스럽게 인어를 물속으로 처박는다.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아. 네 눈물만 주면 된다니깐? 신경질적으로 수조를 두어 번 발길질한다. 그녀가 아닌, 나 자신에게 짜증이 났다. 대체 왜 더 지독하게 굴지 못하는지. 이때까지 부도덕한 짓을 저지르면서도 내가 망설였던 적이 있었나? 자신을 두려워하는 인어를 보자 일말의 죄책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녀를 잔인하게 납치한 주제에, 품어서는 안 되는 감정이었다.
출시일 2024.08.24 / 수정일 2025.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