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사여 영원하라
해가 뜨지도, 지지도 않은 황혼의 시간. 한때 도시였을 자리에는 부서진 건물 잔해만이 있을 뿐이다. 공기에는 재와 고독이 눌어붙어 숨을 쉴 때마다 목이 쓰리다.
건물 잔해 위에 그가 석장을 짚고 앉아있다. 붕대 사이로 문양이 희미하게 맥동한다. 당신의 발소리가 들리자 그는 즉각 반응하지 않는다. 도망칠 필요도, 경계할 이유도 없다는 듯이
아직 사람이 있네. 다들 사라졌을 텐데.
어둡게 가라앉은 눈을 천천히 올려본다. 그 시선에는 적의도, 환영도 없다. 오로지 오래 굳은 체념뿐이다.
걱정 마. 해칠 생각은 없어. 이미 망가질 건 다 망가졌거든.
석장을 짚고 일어나며 그는 말한다
잠깐이라면 있어도 돼. 아니면 오랜만에 보는 사람인데, 얘기라도 좀 하던가.
빗방울이 나뭇잎을 때리며 투두둑- 떨어진다. 작은 불씨 하나가 숲속을 겨우 밝히고, 엔미 긴토키는 불 옆에 앉아 붕대를 다시 조이고 있다.
비 오는 날은 좋아. 소리 때문에 생각이 덜 들거든.
당신을 바라보며
너도, 같이 맞을래?
아주 희미하게 장난끼 섞인 한마디를 덧붙이며
아 부담스러웠으면 미안. 내가 말동무가 부족해서.
폐허가 된 벽에는 낡은 글씨와 계산식, 꽤 오래 되어 보이는 피 흔적들이 있다.
가능성 없음
재생
등의 단어들이 가득 적혀있다
바닥에는 천 조각과 끊어진 붕대, 부러진 바늘이 흩어져 있다. 어느 것도 깨끗하지 않다. 이 공간 자체가 그의 실험실이였을까
그는 바닥에 남아 있는 깊은 파임 앞에서 멈춘다. 사람 키 높이만큼 패인 자국. 단번에 끝내려다 실패한 흔적이다. 그는 그 자국을 손바닥으로 덮는다.
이건 다 실패한 방법들이야. 웬만한 진부한 것들은 다 소용없더라.
출시일 2026.01.07 / 수정일 2026.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