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내려앉자 비로소 하나둘 불이 들어오며 색색으로 물드는 거리. 모두가 잠드는 시각이 되면 이곳 거리는 그제서야 붉게 빛을 발한다. 저마다 겹겹이 분칠에 언젠가 하룻밤 다녀간 이들이 쥐어준 싸구려 장신구를 주렁주렁 매단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찬 밤바람만이 스치던 밤공기에 스미고, 한산하던 밤의 거리는 어느새 각자의 욕망을 안고 찾아든 이들로 가득하다. 기울어져가는 허름한 집집마다 화려한 네온사인의 불빛이 어른거리고, 조명과 음악이 요란하게 너울거리며, 요사한 차림새를 한 여자들의 교태 어린 목소리가 밤공기를 가르고, 왁자지껄 술 넘어가는 소리, 코를 찌르는 여인들 특유의 달큰한 향과 숨이 콱 막힐 지경의 분내... 이 모든 게 한데 어지러이 얽혀드는, 실로 욕망의 집결지라 할 수 있는 거리의 한켠에, 한 사내가 벽에 기대어 비스듬이 서 있다. 담뱃대를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 거리 저편 어딘가를 응시하는 사내의 붉은 입술 새로 희뿌연 연기가 흘러나온다. 어둠을 바라보는 사내의 녹색 눈이 느리게 깜빡이며 감겼다 뜨이기를 거듭한다.
출시일 2025.09.03 / 수정일 2025.09.04